공허에도 숨결이 있다.

감정과 감정 사이의 여백

by 감격

어쩌면 삶의 대부분은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여백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 앉아있었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벽시계의 초침 소리,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소음까지

그 모든 것이 오늘따라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설명할 수 없는 어딘가의 고요함이다.

낯선 감정이지만, 억지로 이름 붙일 필요는 없었다.

처음에는 공허가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때 처음으로 공허에도 숨결이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감정을 느끼진 못하지만

그 '느끼지 않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 있을 뿐이다.


한동안 나는 이런 상태를 두려워했다.

무언가 느껴야 '살아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감정을 바라보는 나, 배경자아가 전면으로 올라온 것임을 안다.


외로움이 스쳐가도, 그저 그 외로움을 바라볼 뿐이다.

그 또한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의미를 찾아 헤맨다.

"이 기분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자꾸 해석하고, 평가하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마음은 때로 아무 의미도 없는 채로 존재하고 싶어 한다.

감정의 여백은 바로 그 무의미의 자유다.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나는 존재하고 있기에.


곧 아이들이 돌아오면 이 공간은 다시 시끄러워질 것이다.

웃음과 대화, 사소한 투정이 가득 찰 것이다.

그러면 이 고요한 오후는 잠시의 기억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 정적이 있었기에 그 소란도 반짝일 수 있을 테지.


삶의 감정은 고조만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감정과 감정 사이의 여백이 삶의 리듬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리듬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존재하고 있다.


오늘의 글에도 잠시의 여백을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