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

통제 대신 선택하기

by 감격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결국 나를 단련시키는 하루가 된다.


개구쟁이 같은 하루


계획 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다.

아니, 그런 날이 더 많다고 해야 맞겠다.


하루를 미리 그려둔 대로 흘러가길 바라지만, 아침부터 예측 불가한 변수들이 밀려온다.

오늘따라 유난히 느긋한 아이의 등교 준비, 바쁜 마음을 몰라주는 천진한 표정,

식탁 위 엉망이 된 장면에 내 속이 거품처럼 끓어오른다.


"시계 보고 서둘러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속에는 '내가 세운 계획이 무너지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끝날 때까지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갔다.

"오늘 왜 이러지?"라는 물음표가 계속 따라다녔다.

이미 짜증이 머리끝까지 가득 차올라 있었다.


아마 예전이라면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에 이미 폭발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때, 마음 한편에서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


"세상이 문제일까. 아니면 네가 세상을 통제하려는 그 마음이 문제일까?"



알아차림의 순간, 나를 바라보다


명상을 한 뒤로, '알아차림'을 연습한다.

감정이 휘몰아칠 때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내쉰다.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통제하려고 하는구나. 후~"

이렇게 알아차리면 가슴속의 파도는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래, 어떻게 다 내 뜻대로 되겠어"


몇 년 전 명상을 접했을 때도 분명 아는 것들이었다.

"숨을 고르세요. 호흡하세요."

그러나 그때는 온전히 믿지 못했다.

'진짜 이렇게 해서 나아진다고?" 라며 의심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다시 만난 명상은 다른 관점을 주었다.

화내는 나를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누군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은 내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 세상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착각


'내 뜻대로 되어야만 좋은 하루'라고 믿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거의 대부분의 매일을 실패라고 여기기 쉽다.


날씨가 흐리면 기분이 나쁘고,

버스가 늦으면 운이 없다고 느끼며,

아이의 투정 하나에 하루를 망쳤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원래 내 뜻과 무관하게 흘러간다.

봄이 오라 한다고 오지 않고,

겨울이 가지 말라한다고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화를 내는 건,

사실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내 의지로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에 대한 반발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화를 내던 나의 모습이 스치며 헛웃음이 피식 터졌다.

"아니, 이런 일에 내가 화를 낸 거야?"



화의 본질은 '미련'이 아닐까


화는 "그렇게 되었어야 했는데"라는 미련에서 온다.

그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무력감,

통제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의 좌절이 화를 가장한 슬픔으로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즉시 온화한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명상을 하든, 책을 읽든, 하루는 여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화에 끌려갔다면

지금은 화를 끌어안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시작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라고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 알아차침의 순간,

감정은 방향을 잃고 힘을 잃는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게 꽉 쥐고 있어 부풀었던 풍선입구를 슬며시 놓아 천천히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통제 대신 선택


이제 나는 하루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루를 망가뜨리지 않는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 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한다.


예를 들어, 아이의 느긋함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지라도

그 순간 "지금 8시야. 시계 보고 움직이자"로 바꾸면

내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상처 없이 등교시킬 수 있다.


감정은 환경이 아니라 '반응'이다.

세상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나를 만든다.


그 작은 차이를 깨닫고 나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도 결국 '나를 알아가게 하는 하루'로 변한다.



결국, 하루는 나를 가르친다.


요즘 나는 하루를 이렇게 부른다.

"오늘도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


계획이 어그러질수록,

사람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수록,

그 안에는 내가 배워야 할 무언가가 숨어있다.


아이를 재촉하지 않는 법,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용기,

내 감정의 파도를 바라보는 연습,

이 모든 것은 하루가 내 뜻대로 되지 않기에 가능한 배움이다.


오늘도 하루는 내 계획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흐른다.

삐끗하고 엎지르고, 늦어버린 하루를 향해 살짝 미소 지어본다.


"그래, 넌 네 마음대로 해라

나는 내 마음대로 그 안에서 나를 배우면 되니까."

이렇게 힘을 빼는 순간,

불완전했던 하루가 놀랍도록 온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제야 아주 조금 알게 된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도 여전히 괜찮은 것임을.


오늘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하루가,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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