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상실과 현재의 발견
무언가 잃어본 사람만이
그것이 얼마나 깊이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커피를 끊으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다시금 음미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순간들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머물고 있었다.
오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삶은 아름다운 음악이 아닐까.
커피를 끊은 지 10달이 되었다.
과거 몇 번을 끊었다 다시 마셨던 것처럼, 흐지부지 될 수 있는 결심이었다.
습관처럼 마시던 한 잔을 멈춘 것뿐이었다.
지독한 편두통 때문이었다.
한동안은 몰랐다.
그 한 잔이 내 하루의 리듬이었다는 것을,
생각을 정리해 내는 여백이었다는 것을.
나를 다독여주던 삶의 음표 하나였다는 것을.
봄과 여름을 지나고 찬바람이 불어서야 깨달았다.
입천장이 데일만큼 뜨겁게 데운 묵직한 라떼 앞에서,
나는 매일 나를 만나고 있었다.
아침마다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던 순간,
김이 피어오르는 걸 멍하니 바라보던 시간,
첫 모금을 넘길 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던 그 온기.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이제 그 자리는 비어있다.
대신 다른 음표가 생겼다.
창가로 스며드는 빛,
향기로운 차 한잔,
누군가 건덴 반가운 안부 한마디.
사라진 것의 자리에서,
늘 곁에 있었던 것들을 비로소 느낀다.
이 작은 것들이 음표로 깔려
내 삶에 보이지 않는 배경음악이 되어주었고,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요즘은 자주 생각한다.
오늘의 이 공기, 이 온도, 이 마음은 내일이 와도
다시 오지 않을 '오늘'로 끝난다는 것을.
사람도, 관계도, 일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잘 흘러간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일은
가장 사치스럽고 가장 진실된 행위다.
결국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나 자신뿐이다.
새로 맛보게 된 대체 커피를 음미한다.
예전과는 다른 마이지만,
이것도 나를 충분히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은 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나서야
그 존대를 드러낸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을 느끼는 일이 가장 사치스럽고,
가장 진실된 행위라는 것을.
다시 오지 않을 하루, 대체될 수 없는 오늘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