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가르쳐준 삶의 의미슬픔이 가르쳐준 삶의 의미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배우며 익숙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오래 알던 지인의 모친상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끔 연락하는 사이여도 언제나 반가운 안부로 이이언 인연이었다.
서로 알게 된 지 10년도 더 넘었고
그동안 자신만의 길을 당당하고 멋지게 걸어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닥친 부고 소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먹먹했다.
얼마 전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오래 아프신 것에만 놀랐을 뿐 이렇게 빨리 가시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순간, 마음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오래전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우리 큰아빠는 췌장암으로 1년 넘게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날 참 이뻐해 주셨고,
결혼하면 나를 낳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늘 말씀하셨었다.
물론,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가셨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여섯 살 조카가 나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물었다.
"하늘나라는 어떻게 가?"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눈앞의 슬픔이 너무 커서 모든 말이 공허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몇 해 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나는 둘째 큰아빠, 막내 작은 아빠, 우리 아빠까지 목놓아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담은 듯한 눈물이었다.
살아오며 쌓인 미안함, 말하지 못한 사랑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 같았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그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며 산다.
아직은 내 일이 아니라고, 오늘 할 일로 마음을 덮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걸음을 잠시 멈춰 세운다.
그 사람의 부재 앞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된다.
죽음이라는 부재 앞에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 서툰 나다.
감히 "괜찮을 거야"라는 말조차 쉽게 하지 못한다.
그저 마음 한편에서 그 사람의 슬픔과 함께 젖어드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다.
내 나이가 되니,
결혼식에서보다 장례식에서 지인들을 보는 게 조금씩 잦아진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삶의 반대편에서 우리에게 더 진심으로 살라고 속삭이는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명상과 더불어 죽음을 곁에 두려 애쓴다.
그 어둠을 피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누군가의 마지막이 남긴 여운 속에서 오늘의 내가 더 깊어지기를 바라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배우며 익숙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삶이 얼마나 덧없고 또 귀한지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은, 그저 살아있음 그 자체로 감사하려고 한다.
이 그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삶에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