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나친 건, 단 하나의 작은 점

어른이 되어 배운 관계의 법칙

by 감격

사람을 오래 겪어본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어간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관계의 구조'를 조금씩 알아간다는 일에 가깝다.


예전에는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같은 마음으로 시작한 관계가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굴러갈까?

함께 있던 그 시절의 공기, 말투, 온도는 다 그대로인데,

왜 우리는 다시 같은 자리에 설 수 없는 걸까.


그때의 나는 그걸 '변심'이나 '서운함'같은 말로 해석했다.

그리고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어쩐지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아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

관계도 결국 물리학과 비슷하다는 것을.

사람은 각자의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을 기준으로 각자의 원을 그리며 산다.


그 원이 잠시 교차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인연, 우정, 사랑, 유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은 그저 아주 작은 한 점을 지나간 것뿐이다.

그 점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을 뿐.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이 변했다.

기억력마저도 달라졌는데, 그만큼 삶의 포커스가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관계 하나하나를 또렷한 선처럼 붙잡고 있었다면,

지금은 더 큰 맥락을 보게 된다.


내가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때의 나, 조금 더 활기차고, 조금 더 순진무구했던

그때의 나를 떠나보내지 못해 그 사람들을 붙잡으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결국 시절인연을

"그때의 나와 그때의 그대가 우연히 교차했던 것"이라 풀이해 본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단지 각자의 원이 다시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나는 다정한 사람은 아니다.

다정함을 애쓰려 하지만,

언제나 내 다정함은 한 박자 느리다.

그래서 예전의 관계들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마음이 스쳤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의 인연들에게 나의 다정함을 좀 더 쥐어주려 애쓸 뿐.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서로의 궤도처럼 만나기도, 멀어지기도 할 것이다.

중년이 되었다고 인연이 더 단단해지는 것도,

더 쉽게 풀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지나친 건 아주 작은 한 점이었지만,

그 점이 남긴 온도는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그 온도 덕에 그 사람을 떠올리고, 유연함이 생기고,

새로운 인연 앞에 조금이나마 덜 서툴게 된다.


지나간 인연을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된다.

그 시절 우리는 그 순간에 이미 충분했다.


그러니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다정해지길 바란다.

그 정도면 삶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인연에도,

떠나간 인연에도 조용한 예의를 지킨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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