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유 하나로도 충분한 하루
나의 어떤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충만하다.
반대로, 하루를 빡빡하게 채웠는데도 이상하게 허무할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모순 앞에서 멈추게 된다.
"오늘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로, 여유를 느끼던 순간도 금세 불안으로 바뀐다.
살다 보면, 하루의 기준이 자꾸 바뀌게 된다.
예전에는 하루를 꽉꽉 채워할 일을 해낸 날이 좋은 날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마음이 더 편할 때가 있다.
하루의 기준이 달라지는 이유는
아마 '나를 판단하는 잣대'가 늘 외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의 인정,
보이는 성과,
그래서 오늘을 제대로 살았다는 확신
이것들이 나의 하루에 대한 무게를 대신 재어준다.
그러니 그 무게는 언제나 불안정하다.
성취가 많을수록 마음은 가벼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무거운 날이 많았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된 것은,
하루의 의미는 '무엇을 했는가'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무엇이 내 안에 쌓였는가'에서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
어떤 날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을 마무리하고
뜨거운 컵 위로 피어오르는 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작은 온기가 마음 한구석을 데우고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아이의 숨결 속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화를 느끼기도 했다.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하나로 하루가 충만해졌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 한다.
지금을 살아내는 '경험하는 나'와
그리고 그 하루를 되돌아보는 '기억하는 나'
문제는 이 둘은 거의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할 땐 충만했지만 돌아보면 허무하고
지루했던 하루가 시간이 지나면 의미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매번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그 혼란을 "내가 부족해서"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어긋남은 결함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흔들림이다.
흔들림이 있다는 것은
내가 지금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평가하기를 멈추고 대신 '발견'하기로 했다.
아무 일도 없던 하루일지라도
내가 걷던 길가에서 본 따뜻한 빛,
누군가 내게 건넨 말속에 숨겨진 작은 배려,
하루 종일 흐트러진 마음을 붙잡아준 한 줄의 문장.
작고 소중한 순간순간이 내 하루에 깊이를 더해준다.
물론 살다 보면 깊은 허무가 불쑥 찾아온다.
이유 없이 마음이 무겁고
나아가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대신 그저 나를 토닥인다.
"지금 이 허무도 하루의 일부일 뿐이야"
이름을 붙이면 감정도 조금 덜 무겁다.
허무도, 불안도, 여유도 결국 하루의 조각일 뿐이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모여 '오늘'이라는 전체를 만든다.
하루의 무게는
"얼마나 많이 했는가"로 단정 짓기보다
"얼마나 온전히 존재했는가"로 결정해 보면 어떨까
오늘 내가 얼마나 나답게 있었는지,
얼마나 내 마음을 잘 헤아렸는지,
그것이 하루의 의미를 조용히 완성해 줄 것이다.
결국,
"오늘도, 나는 살아냈다"
그 사실 하나로 충분한 날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작은 이유만으로도 멋진 하루를 완성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