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3년 전쯤, 둘째와 나란히 누워 잠자리에 들던 어느 밤이 떠오른다.
방의 불은 이미 꺼졌고, 잠들기 전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던 평범한 시간이었다.
그 시기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꽤 집착하고 있었다.
제목에 ‘행복’이 들어간 책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많이 읽으면 언젠가 나도 더 행복해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그날도 책에서 본 질문을 떠올리며, 괜히 아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둘째는 이불을 푹 덮어쓴 채,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랑 있어야 해.”
그 한 마디에 그동안 읽은 행복에 관한 책들을 하얗게 잊었다.
그간 독서를 하며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문장도, 메모해둔 문장도,
정작 내 머릿속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의 짧은 대답만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행복을 떠올릴 때, 그 밤의 대화를 함께 떠올리게 됐다.
행복은 ‘나 혼자’ 도달해야 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안정감을 느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이론으로 설명하면 어렵지만, 아이의 말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행복하려면, 내가 좋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된다.”
그 후로 내 질문도 조금 달라졌다.
‘나는 행복한가?’ 대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아이에게 나는 여전히 “행복의 조건”일까?
배우자에게, 친구에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감정으로 남아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의 행복 조건이 되기 위해 거창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힘들어 보이는 얼굴을 보고 “오늘 좀 지쳤지?”라고 한 마디 건네는 것,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괜찮아,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정도면 충분할 때가 많다.
행복은 거대한 목표나 완벽한 삶의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당신과 있을 때 나는 편안하다”고 느끼는 그 마음,
그 감정의 합이 우리가 말하는 행복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누구의 곁에서 어떤 사람으로 있었을까?”
정답을 몰라도 괜찮다.
다만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이렇게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어.”
오늘도 나는, 그대는, 우리는 누군가의 “행복 조건”일지 모른다.
그 사실을 잠깐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조금 더 충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