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1등을 하고 싶었던 아이
나의 '인정'에 대한 집착은 초등학교 시절,
교실 벽면에 붙어있던 독서 스티커 판에서 시작된다.
나는 책의 내용보다 그 옆에 붙을 노란 스티커의 개수에 더 집착했다.
1등을 하고 싶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스티커를 붙여
내가 '잘하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서 책장을 넘겼다.
그때의 나에게 독서는 즐거움이 아니라 나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였다.
이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독하게 이어졌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나를 드러내는 모든 공간에서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칭찬 스티커'를 찾았다.
반응이 적으면 금세 동력을 잃었고,
대부분 2년을 넘기지 못한 채 '이건 내 길이 아니야'라며 도망치듯 관두기를 반복했다.
남의 성과를 보며 마음이 아릿해졌던 건,
사실 그들의 성과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내 스티커 판만 비어있다는 결핍 때문이었다.
'좋아요'라는 신기루
타인의 인정은 달콤하지만 유통기한이 짧다.
'좋아요' 숫자가 올라갈 때는 세상의 중심에 선 것 같다가도,
반응이 시들해지면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도 나는 내심 두려웠다.
'또 1년쯤 하다 반응이 없으면 식어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그동안 '인정'이라는 말을 어떻게 '느껴' 왔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써' 왔는지를 돌아본다.
나는 인정을 '받아야 할 보상'으로 써왔다.
그러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브런치에서 한동안 글을 잠시 멈췄던 시기가 딱 그랬다.
내 글은 내 취향도, 타인의 취향도 아무것도 아닌 글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두의 만족은 불가능하다는 자유
최근 같은 시리즈 내의 글들 중에서도 그 반응의 온도 차를 겪으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반응이 좋은 글이 반드시 내가 '잘 쓴' 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반응이 적은 글이 내 '실패'를 증명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수용할 때,
오히려 글에는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인정은 타인에게 구걸하는 박수가 아니라,
내 삶의 궤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의 몫은 오직 '멈추지 않고 쓰는 것'
여전히 나는 인정을 '구걸'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오는 '선물'로 여기기로 했다.
이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나의 사소한 꾸준함을
내가 가장 먼저 알아봐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더 이상 반응이 적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짐을 싸서 떠나지 않으려 한다.
나의 몫은 오직 '멈추지 않고 쓰는 것'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정은 나를 바꾸려는 채찍이 아니라,
내가 나다운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가장 다정한 지도다.
나는 오늘, 타인이 붙여줄 스티커를 기다리는 대신
내 손으로 내 하루의 기록을 묵묵히 채워나간다.
그러기에, 나의 기록을 응원해 주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인정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추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언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은 오늘, 타인의 '좋아요'가 없어도
스스로에게 "참 잘했다"라고 말해주며 당신만의 궤도를 지켜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