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은 나의 예스를
지키기 위한 울타리이다.

거절

by 감격

나는 오랫동안, 아니 여전히 지금도

'거절'이라는 단어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거절은 나에게 관계를 끊어내는 칼날 같았고,

누군가의 부탁을 물리치는 것은

곧 내가 '나쁜 사람'임을 자백하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여력이 파산 상태에 이르렀을 때조차,

기쁨을 들여놓을 작은 의자 하나 놓지 못한 채,

타인의 요청으로 마음의 방을 가득 채우곤 했다.


집중의 다른 이름, 아니오

스티브잡스는 한 인터뷰에서 집중에 대한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집중이란,

집중해야 할 일에 “예”라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집중이란, 존재하는 수백 가지 좋은 아이디어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그동안 나의 "예"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선택이 아니라,

거절할 용기가 없어서 내뱉은 회피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했다.


나는 모든 것에 "예"라고 답하느라

정작 내가 지켜야 할 에너지의 물길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고,

나는 매일 조금씩 소멸해 갔다.


거절하지 못한 대가

과거의 나는 상대에게 맞추고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나를 죽여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거절 없는 수용은 일종의 자기 학대였다.

타인의 기대를 채우느라 정작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에

누릴 기쁨과 에너지는 고갈되었고 사치라 여기며

하루를 겨우 '통과'하는 방어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식별의 도구

이제 나에게 거절은 식별의 과정이 되길 바란다.

수백 가지 좋은 제안 중에서도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남기기 위해,

나머지에게는 정중히 '아니요'를 건넬 수 있는 것.


이때 내가 건네는 대안은,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의 표시가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에너지를 온전히 써 내려가길 바라는

'우아한 응원'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돈이 되지 않는 감사일기, 브런치 글쓰기를 하면서

무기력의 늪에서 나 자신을 건져내고 있듯,

적절한 거절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고유한 작업이다.


정중한 거절 뒤 찾아올 적막이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방치하지 않고,

가장 아끼는 선택을 하기 위한 용기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거절은 타인에게 긋는 잔인한 선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기로 선택한 삶을 지키기 위해 두르는 가장 다정한 울타리이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거절은 단순히 무언가를 거부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은 단 하나의 가치를 위해

수백 개의 다른 가능성을 내려놓는 신중한 선택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은 오늘 누군가의 ‘예’가 되기 위해,

정작 당신 자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아니오’를 외치고 있나요?

당신이 신중하게 골라낸 당신만의 '예'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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