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란 내면의 소란이 잦아들 때
비로소 들리는 것

침묵

by 감격

침묵은 내게 오래도록 불편한 단어였다.

말이 없으면 진 것 같았고, 가만히 있으면 비겁한 것 같았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상태는 곧 ‘포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내 마음이 가장 시끄러웠을 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네 안의 목소리를 들어봐.”


그 조언이 얼마나 막막했는지 모른다.

내 안에는 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이 쏟아내는 말, 비교가 던지는 말, 자책이 쥐어짜는 말.

그 모든 소리가 너무 생생해서, 그게 곧 ‘나’라고 여겼다.

그래서 더 열심히 들으려고, 머릿속에서 답을 끌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리는 마치 확성기를 켠 것처럼 커져만 갔다.

그때는 나는 몰랐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말이, 더 많이 생각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걸.


조언을 받은 지 2주쯤 지났을까.

버스를 타고 가던 평범한 오후였다.

유리창 밖으로 지나가는 나무와 신호등, 누군가의 뒷머리, 흔들리는 손잡이.

별일 없는 장면들이 이상하게 또렷해 보였다.


그 순간, 마음이 잠깐 멈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질문에만 매달려 있던 힘이 아주 잠깐 풀렸다.


그리고 또렷한 ‘방향’이 느껴졌다. 누가 대신 말해준 게 아니었다.

정답처럼 번쩍 떠오른 문장도 아니었다.

다만 확신에 가까운 감각,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조용한 방향감각 같은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내 목소리’라고 믿었던 것들 중 많은 부분은

사실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는 걸을 말이다.


불안이 떠드는 소리, 상처가 흉내 내는 소리,

세상이 내게 요구했던 기준이 내 안에서 반복 재생되는 소리.

그 소음들은 너무 익숙해서 내 목소리처럼 들렸을 뿐,

정작 ‘나’는 그 아래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침묵을 다시 보게 됐다.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겁함이 아니었다.

비어버린 상태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침묵은 이미 가득 찬 마음이 더 이상 소음을 덧칠하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그동안 침묵을 ‘없음’으로 오해했다.

하지만 침묵은 ‘없음’이 아니라 ‘정돈’의 상태였다.

내면의 소란이 잦아들 때 비로소 들리는 것.

그 조용한 것 하나를 위해, 우리는 그렇게 오래 시끄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진짜 목소리는 소리를 키우지 않는다.

급하게 설득하지도 않는다. 불안을 쫓아다니지 않는다.

진짜 목소리는 소란이 잦아든 뒤에야

마치 “여기 있어”라고 말하듯 존재할 뿐이었다.


침묵이란 내면의 소란이 잦아들 때 비로소 들리는 것이었다.



[이 편이 남기는 정리]

침묵은 '없음'이 아니라 '정돈'이다.

내면의 소란이 잦아들 때 비로소 들리는 그 조용한 것 하나를 위해,

우리는 그토록 오래 시끄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이 그토록 '내 목소리'라고 믿으며 붙들고 있는 그 소리 중,

소란이 걷힌 뒤에도 끝까지 남아 당신을 기다려줄 진짜 목소리는 무엇인가요?

월, 수, 금 연재
이전 17화거절은 나의 예스를 지키기 위한 울타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