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
나는 오랫동안 '다정'이라는 단어를 타인을 향한 상냥함으로만 써왔다.
내게 다정함이란 남의 불편을 먼저 살피는 기민함이었고,
거절하지 못하는 성정이었으며,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지키기 위해 내 목소리를 낮추는 사회적 비용이었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날 선 말을 내뱉었고,
거울 속의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모질고 엄격하게 되었다.
밖으로 향하는 다정함이 선명해질수록 내 안은 거칠고 황폐해졌다.
나의 다정은 지독한 모순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성벽이었다.
이 팽팽한 모순이 무너진 것은 24년도 브런치 팝업 행사에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문득,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다정함이
사실은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건네야 할 '대접'이며 '환대'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나를 돌보는 일에는 무기력하면서
남을 돌보는 일에만 유능한 척해왔음을,
나 자신을 피고름 나게 긁어대던 자책의 언어들로
스스로를 해치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연습을 했다.
이름은 단순히 타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이자, 기대와 책임,
사랑과 진심을 모두 담아내는 존재의 상징이다.
나는 그동안 내 이름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혹은 내 삶이 대단하지 않다는 자격지심으로
내 이름을 당당하게 부르지 못했다.
하지만 진정한 다정함은 완벽한 이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삐뚤빼뚤 서툴게 쓰인 지금의 내 이름조차
온전히 수용하고 불러주는 힘에서 나온다.
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른다는 것은,
실수하고 흔들리는 나의 모습까지도 내 일부로 인정하며
성장할 공간을 내어주는 '비움'의 행위다.
타인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이름표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난하지 않고 따뜻하게 바라보며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이제 나에게 다정함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이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태도'로 정의된다.
다정함은 세상을 향해 짓는 부드러운 미소이기 전에,
내 안의 고통과 불안이 머물 자리를 기꺼이 비워두는 단단한 환대다.
내가 나에게 다정해질 때 비로소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오해 없는 진심을 전할 수 있다.
다정은 나를 구원하러 오는 가장 나직하고도 확실한 호명이다.
[ 이 편이 남기는 정리 ]
다정은 나를 깎아 타인을 빛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수용하며 나 자신에게 가장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 이 편이 남기는 질문 ]
당신은 오늘, 타인에게 건네는 상냥함만큼이나 당신 자신을 다정하게 불러주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