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원래대로라는 달콤한 함정
우리는 회복을 '복구'와 혼동한다.
상처 입기 전의 상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평온한 예전의 나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정답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결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나를 무너뜨린 것은 거대한 파도가 아니라,
일상의 틈새마다 차곡차곡 쌓여온 미세한 균열들이었다.
복합적인 위기 앞에서 내가 붙잡았던 '회복'이라는 말은
사실 과거라는 안전한 피난처로 도망치고 싶은 비겁함이기도 했다.
그 오해 때문에 나는 변하지 않는 현실을 자책하며
나 자신을 더 깊은 무기력 속에 방치해 두곤 했다.
문장에서 시작된 길
그때 처음 물길이 되어준 것은 루이스 헤이 '치유'의 문장들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선언은 나를 미워하던 오랜 관성에 균열을 냈다.
나는 이 문장을 눈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온 감각으로 가져가려 애를 썼다.
아침이면 내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워 겨우 몸을 씻어내기만 하던 시절,
욕실의 증기로 뿌옇게 된 샤워부스 유리벽에 나는 손가락으로 적어내려 갔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물줄기에 금세 씻겨질 문장이었지만,
손끝에 남은 그 온기는 내 생존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비망록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기운을 차릴 때 만난 책은 멜로빈스의 "굿모닝 해빗"은 나를 다시 일으켰다.
자고 일어난 모습 그대로 거울 속 초라한 나와의 '하이파이브'를 시작했다.
그것은 나조차 나를 외면하던 시기에 내가 나에게 건넨 유일한 응원이었다.
나를 더 이상 혼자 두기 않겠다는,
나를 마중 나가는 용기 있는 시간이었다.
나를 정화하는 눈물과 다정한 깨달음
우연처럼 찾아온 오대산에서의 시간은 내 안에 감춰있던 감정을 깨웠다.
명상 중 듣게 된 "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나는 참아왔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감정이 메말라 눈물조차 사치라 여기던 시기를 지나,
비로소 다시 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눈물은 나를 비난하는 채찍이 아니라 나를 정화해 주는 따뜻한 메시지였다.
그 무렵 만난 책이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내게 회복의 또 다른 조각을 건네주었다.
"살면서 가장 멋진 깨달음이 뭐니?" 두더지가 물었어요.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것"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회복이란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강인함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에게 내미는 가장 정직한 다정함이었다.
지금은 힘을 빼는 중
꽤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회복을 통과하고 있다.
나를 미워하고 몰아세우던 오랜 관성을 거슬러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쪽으로의 전환은 여전히 고단하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 긴장해 온 몸의 근육들이
힘을 빼는 이완이라는 낯선 감각 앞에서 불쑥 굳어버리듯이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들쑥날쑥한 평온의 굴곡을 실패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힘을 빼려고 애쓰는 그 서투른 노력마저도
나의 회복의 일부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회복이란,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그 '상태' 자체다.
나는 오늘도 거울 속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사랑과 감사로 응원을 전한다.
당신의 삶 또한 함께 회복하기를,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다정하기를 바라며.
<이 편이 남기는 정리>
회복은 이전의 나로 돌아가는 복구가 아니라,
상처를 가진 채로 더 단단하게 나를 '재설계'하는 에너지의 쓰임이다
<이 편이 남기는 질문>
당신은 오늘,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지금의 당신에게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한 하이파이브를 건넬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