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나의 생일

다시, 비커밍

by 감격

카카오톡에는 생일 알림 기능이 있다.

예전엔 그 기능이 반가웠다.

친구들, 동료들, 오래 연락 없던 사람들에게도

‘생일 축하해!’라는 말이 한 줄씩 날아들면

내가 오늘 하루,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가끔은 생각지 못한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럴 땐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고,

하루가 조금은 밝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어느 해부턴가 그 따뜻함이 줄어들었다.

알림을 켜두었는데도 축하가 오지 않거나,

와도 너무 짧고 의례적인 메시지뿐이라

도리어 서운해지는 순간이 많아졌다.


나는 조용히 알림을 껐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선택이었고,

누구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해 생일은 그렇게, 정말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좋다"라고 말했던 건 언젠가였지만

막상 아무 일도 없는 생일은 꽤 쓸쓸했다.


- 태어남의 이야기, 축하보다 고통 -

나는 평범하지 않게 태어났고,

그날의 이야기는 언제나 엄마의 고통으로 시작된다.

엄마는 나를 낳을 때 큰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다.


맹장염을 산통으로 오인해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고,

아빠는 지방에 계신 상태였단다.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어

맹장 수술을 따로 받고 수혈도 여러 봉지나 하셨다고 했다.


나는 예정일보다 빠르게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갔고,

엄마와 나는 첫 시간을 버텨내야 했다.


어릴 땐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나를 낳느라 정말 힘드셨구나’

하는 단순한 감정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억은 축하보다 죄송함을 남겼다.


엄마의 고생이 너무 컸던 탓일까.

생일이 ‘내가 태어난 날’이 아니라

‘엄마가 고생한 날’로 기억되는 이상한 감정이 남았다.


- 생일을 피하고 싶었다 -

나는 점점 생일을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축하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며 애써 말했고,

기념일도 소박하게 보내자며

남편과도 약속처럼 정해놓았다.


그런데 어느 해,

아주 평범하게 흘러간 생일 저녁,

갑자기 마음이 텅 비는 순간이 있었다.


TV를 보며 밥을 먹고,

아이 챙기고, 씻기고,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일인데, 아무도 몰라도 괜찮은 걸까?'

'이렇게 평범한 하루가 내 삶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고,

기념일을 특별하게 보내지 않는 대신

내 존재도 그저 그런 날들에 스며들어

점점 잊히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정말,

내 생일을 기뻐해도 되는 사람일까?


-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 -

사실 축하받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축하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대하지 않고,

누구의 태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사람.

하지만 현실의 나는

한 줄의 메시지에도 웃고,

그 메시지가 없으면 서운해하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작게 느끼고,

존재를 가볍게 다루며,

스스로의 생일조차 모른 척해버린 날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 무디고 메마르게 만들어버렸다.


감정이 마를수록

기쁨보다 짜증이 먼저 나오고,

축하보다는 ‘그럴 줄 알았어’라는 실망이 남는다.

그런 내가 싫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현실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누구도 찾지 않는 날, 내가 나를 찾아야 한다

결국 알게 되었다.

생일은 누가 챙겨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매해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 살아 있어서 기뻐?”

“너라는 사람이 태어난 게 축복이야?”

“너는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 자격이 있어?”


그리고 그 질문에

나는 스스로 ‘글쎄…’ 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 회피가 계속되면서

생일은 점점 잊히는 날이 되었고,

‘기쁨’은 무겁고 불편한 감정이 되었다.


- 다시 나를 축하하기 위한 연습 -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바꾸고 싶다.

작은 연습처럼,

나에게 하루쯤은 생일을 기뻐해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케이크가 없더라도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작은 꽃 한 송이라도 사서 내 방 한편에 두고 싶다.


아무도 축하하지 않아도

거울 앞에서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오늘 하루, 너답게 살아줘서 고마워.”

누구보다 먼저 나 자신이

그 말을 믿고, 느끼고,

허락해 주는 날이 되면 좋겠다.


누구도 찾지 않는다고 느끼는 날에도

나는 나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 오늘의 비커밍 질문

나는 왜 내 생일을 기쁘게 맞이하지 못할까?

‘기념일’에 느끼는 감정은 나의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가?


✍️ 미니 저널링 가이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외로운 생일을 떠올려 그날의 감정을 써보기

생일이 ‘기쁘지 않은 날’이 된 배경과 이유를 적어보기

올해 생일에 나만을 위한 작은 의식 한 가지를 기획해 보기
예전엔 그 기능이 반가웠다.


친구들, 동료들, 오래 연락 없던 사람들에게도


‘생일 축하해!’라는 말이 한 줄씩 날아들면


내가 오늘 하루,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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