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계산 사이

다시, 비커밍

by 감격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건네는 일이다.


나는 받는 것에 서툴렀던 만큼,

주는 일에도 한동안 조심스러워했다.

어릴 때 이웃집과 나누던 정을 알았지만,

고등학생 시절 사건 이후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계산'으로 비춰질까 두려웠다.


그런 나에게 다시 선물의 의미를 알려준 사람은,

직장 상사였다.

그녀는 생일마다 케이크와 편지를 준비했고,

결혼하는 팀원에게는 영상이벤트를 만들었다.

사적인 친분으로 가끔 분위기 좋은 맛집에서

숨통이 트이게 해주었다.


그녀는 늘 활기찼고 주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조직을 알게 해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전무하던 CS를 통째로 믿고 맡겨줬다.

그리고 적극 지지해주었다.

그동안 그녀가 업무외에도 사람들을 챙겼기에,

그녀의 지지에는 힘이 있었고 나도 자리를 잡게 도왔다.


그렇게 "받았던 순간"은

나 또한 "주는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서 단순히 주는 것이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

작은 포스트잇 한장, 따뜻한 말 한마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위로까지도,

이 모든 것은 결국 마음을 건네는 일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특히, 그 마음이 잘 전달되었을 때,

돌아오는 상대의 표정은 나에게 다시 선물이 되었다.


물론, 그 '기쁨의 순간'이 언제부터인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기준'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괜찮을까? 과하진 않겠지?"

"이렇게 건네면 뭐라고 생각하려나?" 등등

고민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렇게 준다는 것이 때로는

내가 가진 것의 '한계'를 직면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이걸 왜 주고 싶지?"

정말 주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그런 사람이고 싶은 걸까?


계산과 진심 사이에서 마음이 오락가락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어릴적 나누었던 간식하나,

힘든 날 그녀가 건넸던 짧은 한마디 같은 기억을 떠올린다.

그 마음에는 계산이 없었고,

나라는 사람을 향한 온기만 있었다.


선물을 건넬 때 여전히 나는 망설인다.

하지만 그 망설임조차 마음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다시 용기를 내어본다.

따뜻한 내 마음이 먼저 닿기를 바라며.





� 오늘의 비커밍 질문

나는 최근 누군가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했는가?

그 선물엔 어떤 ‘의도’가 담겨 있었는가?


✍️ 미니 저널링 가이드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선물’을 떠올려보세요. (메시지, 미소, 도움 등)

“나는 지금 이걸 왜 주고 싶은 걸까?”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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