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플 때 나를 미워하지 않는 법
아플수록 나를 미워했다.
얼마 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병원으로 가서 링거를 맞게 되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조용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스레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왜 이렇게 자꾸 아프지?'
아프다는 사실보다, 또 스스로를 비난하는 마음이 더 아팠다.
한 방울, 두 방울, 똑똑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스르르 눈을 떴을 때,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도 나는 링거를 맞을 수 있잖아.
병원에 올 수 있고, 쉬어갈 수 있는 잠시의 여유가 있어.
그렇다면, 나는 감사해야 할 일 아닐까?'
이내 과거 암 판정을 받았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후회는 돈이 아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암이라고 하기에 미안할 만큼 제자리암이라 불리는 극초기였다.
최초 진단부터 대학병원에서의 검사, 수술,
그리고 재검까지 거의 10개월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때의 아픔은 훨씬 더 깊은 차원이었다.
실감도 나지 않는 암이라는 단어,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지독히도 길었다.
내 몸은 나를 배신한 것 같았고, 내 삶도, 사고도 모두 정지한 것 같았다.
물론 더 심각했더라면 돈부터 걱정했을 테지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시간을 지나면서, 신기하게도 돈 걱정을 하지 않았다.
가장 크게 떠오른 것은 '후회'였다.
'더 많이 웃을걸, 더 다정하게 대해줄걸.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다정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여유를 미루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
그것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아픈 것보다 더 아픈 건, 내 탓이라는 생각
왜 사람은 아프면 자책부터 하게 될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비난(Self-Blame)" 경향으로 설명한다.
뇌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며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는 오래된 생존 본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기 비난은 회복을 더디게 한다.
2021년 Journal of Behavioral Medicine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 통증 환자 중 자기 비난 성향이 높은 이들은
통증 강도도 높고, 회복 속도도 느렸다.
반대로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 높은 사람들은
스트레스 수치가 낮고, 회복도 빨랐다.
즉, 아플 때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뇌의 자동 반응일 수 있지만, 의식적으로 끊어내야 할 패턴이기도 하다.
내 몸을 믿으라는 신호
링거를 맞는 동안 깨달았다.
나는 추적 관찰을 해도 좋다는 소견을 받았고,
일상생활에도 전혀 지장이 없지만 여전히 산정특례대상자다.
지금 맞고 있는 링거도 마찬가지다.
내 몸은 여전히 살아있고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내 몸은 나를 배신한게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프다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쓰다듬어줘야 했다.
여전히 연습이 필요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몸이 아플 때 기억할 3가지
이제 몸이 아플 때는 이를 무시하지 않고 3가지를 살피기로 했다.
1. 아프면 쉬어야 한다.
쉼 없이 버티다간 더 큰 고장을 맞닥뜨려야 한다.
충분한 휴식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고,
면역을 강화한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있지 않은가.
뻔한 소리라고는 하지만,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2. 자기 연민을 연습하자.
'왜 이렇게 나약하지?' 대신,
'많이 애썼구나,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책과 자기 비난에서 얻은 것은 없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연민으로 정서적 고통을 훨씬 줄여줄 테니까.
3. 후회 대신 사랑을 선택하자.
후회는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다정함을 잘 전달하는 것이다.
'다음'은 없다. 오늘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하자.
죽음이라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끝을 향해 매일 달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다음을 기약하기엔, 삶은 너무 예측 불가능하다.
그저 잠시 쉬어가는 시간 만들기,
내 몸에게 "고마워, 수고했어" 말해주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해, 고마워" 메시지 보내기,
어제보다 한 번 더 웃기,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기.
이렇게 당장이라도 가능한 사소하고 작은 행동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 나를 쓰다듬는 법
링거를 맞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내 몸은 내 편이었고,
나를 살리고자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쉬어도 괜찮아, 충분히 해내고 있어"
아픈 나에게 다정해지는 것에 나는 여전히 서툴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한 다정함이, 누군가에게도 닿길 바란다.
아프다고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살아있다는 건, 회복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