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에서 멈춘 마음

나와 다시 연결되는 연습

by 감격

운전이 낯설어지기까지


나는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운전대를 처음 잡았을 때도, 긴장과 불안은 늘 함께였다.

하지만 그 덕에 나는 더 조심했고, 내 속도대로 차근차근 익숙해졌다.

겁이 없던 것이 아니라 겁을 이겨내며 해냈었다.


처음 면허를 준비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일하면서도 가능했던 새벽반을 등록했고, 누구의 권유가 아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장내 기능 시험은 졸음이 올정도로 반복해 익숙해졌다.

주황 신호에 지나가지 않고 급히 멈추는 바람에 라임을 살짝 밟아

4점 감점을 받았던 것이 유일한 실수였다.

도로 주행 연습에 들어가서는 자신감이 붙었고,

강사님도 잘하니 더 멀리 나가 연습할 수 있게 해 줄 정도로 겁이 없었다.


도로시험 당일, 나는 B코스였는데 A코스 수험자가 없었다.

A코스까지 감독관이 운전하고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내게 차를 넘겼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그때부터 긴장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우회전이 빨랐다는 말 한마디에 숨이 막혔고, 시험 후 언덕 일렬주차까지 완벽했지만,

그 사이 친분이 생긴 학원 사람들이 떨어질 것 같다는 농담 한마디에 눈물이 났다.

운전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물론 합격을 했다. 1종 보통.


바로 차를 사지는 못했지만, 간간히 아빠의 차를 몰았다.

어쩌다 가끔 운전을 해도, 나는 언제든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출산한 뒤, 조수석에 앉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나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운전이 더 이상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느꼈을 뿐이었다.

내 옆에, 혹은 뒷자리에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내 모든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든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상상하게 되고 낯선 길은 설렘이 아닌 공포였다.



굳어진 마음


혼자 운전을 할 때에도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안전 운전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른 생생하고 구체적인 공포였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급발진이 일어나면? 다른 차가 돌진하면?

말도 안 되게 과한 질문이 나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나의 두려움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운전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내가 없는 사이 벌어진 큰 사고였다.

남편과 친정엄마, 아이들을 태운 차가 사고가 났고 차는 폐차를 했다.

집에 가시던 엄마를 배웅한 남편이었고, 나는 그날 유독 몸이 좋지 않았다.

촉이 유달리 좋은 나는 아이들에게는 가지 말 것을 재차 권했음에도

가고 싶어 눈물 흘리는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데려간 참이었다.


내 핸드폰에 "사고 접수"라는 메시지가 떴을 때만 해도, 간단한 차량 문제라 여겼다.

짤막한 통화에 남편은 "구급차를 불렀어"라는 말 한마디 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이들을 보내기 싫던 직감을 무시한 나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야 친정엄마와 연락되었다.

엄마와 아이들은 생전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다며 1시간 가까이 대기를 했고,

걱정하는 나를 알아차리고 되려 씩씩하게 말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한동안 차를 타야 할 상황에서

"사고 안 나지?"혹은 "사고 나서 나 아팠는데"라는 말을 했다.


눈가를 다친 큰 아이는 더 고생을 했다.

아이에 대해 잘 모르는 친정엄마, 아빠이다 보니,

한 번도 안 먹였던 항생제를 주는 대로 받아와 먹였다.

이후 피가 나고 상처가 나도록 몸을 긁었고,

그렇게 몇 년을 고생했다. 지금도 습관처럼 긁을 만큼.


그 사고에 나는 없었지만 나는 매일 매분 매초 반복해서 재생된다.

연락이 되지 않던 시간은 내 모든 가족이 한꺼번에 사라진, 끔찍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나의 사고'였다.


차량 구매도 미루고 미뤘다. 그날 이후, 나는 운전대를 멀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괴로운 것은 이런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시 하면 되는 거잖아"

"안전 운전하면 되지!"

"그러게 처음 면허 따고 꾸준히 좀 하지."

스스로를 다그치며 더 큰 스트레스를 만들었다.

운전을 '못하는'것에 대한 자책과 실망이 쌓여갔다.



나를 지키려는 신호, 두려움


지금도 마찬가지다.

멀쩡히 있다가도 운전을 해야 할 상황이 되면,

경직된 어깨와 빠르게 뛰는 심장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얼마 되지 않는 코 앞의 거리에도 숨이 막히기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몇 년 전에 머물러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나 자신이 누구보다 답답하고 창피하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만큼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내 몸이, 내 마음이, 나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신호라는 걸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강한 감정과 연결된 사건은

뇌에 깊이 각인되고,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경고음처럼 울린다고 한다.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두려움과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핵심이라 말한다.



나만의 속도로 다시 시작


남편은 현장에도 없던 나의 두려움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금 못하겠으면 내가 있으니 못하는 것을 인정해도 괜찮다'라고 배려해 준다.

물론, 조수석에 앉는 것을 가끔 꿈꾸겠지만 말이다.


매일 운전한 베스트 드라이버도 아니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다고 운전을 아주 잘하진 못했을 터다.

하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아주 작은 실천을 해본다.


1. 주차장에서 시동만 걸어보기

2. 익숙한 길을 낮시간에 혼자 주행하기

3. 꼭 가야 한다면 사전에 남편과 답사하기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운전은 늘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갑작스러운 일에도 차분하게 나를 믿는 법일테니까.


여전히 운전이 두렵다. 남들은 어이없이 웃을지 몰라도,

몸이 긴장하고 마음이 움츠러든다. 나는 그렇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금 중요한 건,

나를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핸들을 놓고 있어도 여전히 살아간다.

숨 쉬고 걷고 나를 돌보고 있다.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이 두려움마저 지나가리라 믿는다.

오늘의 긴 글을 남겨두는 것 또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복하는 과정임을 남기고 싶어서다.

그때는 또 다른 단어들과 드라이브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불완전한 삶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서툴고 부끄러운 글 속에서도 저만의 중심을 세워가며,
주어진 칸을 하나씩 메워가고 있습니다.

이 귀한 시간이 여러분과의 다정한 사색으로 머물기를,
그리고 오늘 하루가 특별한 맛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글의 끝자락에,
용서와 감사의 마음을 올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