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진심에 가라앉은 마음
무심코 읽은 아이의 진심
"머리를 올려 묶지 않으면 짜증을 내서 나도 짜증이 난다.
그치만 엄마라서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더 답답하다.
그리고 잔소리가 싫다. 아빠가 가장 좋다. 이해도 잘한다.
그래서 나는 아빠보다 엄마가 싫다"
어제 저녁 아이의 글쓰기 노트를 보았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한 번만 읽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은 도저히 읽지 못할 것 같았다.
아이는 어제 아침에도 있었던 일을 썼을 뿐이고,
나도 그걸 아주 잘 안다.
아이의 마음이 그랬다는 것, 그 또한 나는 이해한다.
그럼에도 아이의 글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다정하지 않은 엄마
"엄마는 짜증을 낸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마음이 먼저 올라왔다.
오해받는다는 느낌과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뒤따른 문장은 너무 아팠다.
"그치만 엄마라서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더 답답하다"
아이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는지,
그 억눌림이 나를 향해 터져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싶은 엄마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머리는 혼자 하겠다고 하는데, 늘 머리는 산발이다.
주위에서 엄마들이 물을 정도다.
"어머, 머리 신경 못 써줬나 보다. 바빴어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엄마는 움찔한다.
어리지도 않은 나이,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신경전을 벌여야 하나 싶다.
매일 아침이 전쟁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너를,
더 이쁘고 깔끔하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의 나를,
사랑받고 있다는 걸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아이의 마음속에 그런 나는
이해 못 해주는 사람, 짜증을 내는 사람,
그리고 가장 '싫은' 사람이었다.
아이의 진심에 무너지는 엄마
이해한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감정에 솔직한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표현한다는 것이 건강한 셈이다.
아이에게 미움과 사랑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와 상처는 다르다.
이해한다고 해서 덜 아픈 게 아니니까.
"아빠보다 엄마가 싫다"는 그 한 줄은
내가 했던 수많은 노력과 애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안겼다.
엄마는 잔소리를 해야 하고,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아이에게 '싫은 사람'이 되면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존재다.
그런 나이기에, '싫다'라는 말이 그렇게 아팠다.
엄마도 사람이라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가장 깊게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이만큼, 엄마인 나도 계속 흔들린다.
내가 이해해 준 수많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엄마라는 이유로 널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엄마도 사람이라서 헷갈린다.
나는 어쩌면 아이보다 더 미완성인 존재이다.
더 쉽게 상처받고, 더 깊이 흔들린다.
그래서 더더욱 나 자신을 살피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단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어린 나도 함께 키우는 중이다.
엄마가 되기 위해 매일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더 다정해질까?
어떻게 하면 잔소리를 덜할까?
아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심리학이 말하는 "엄마의 자리"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은 아이의 건강한 정서 발달에 있어
부모가 '완벽한 양육자'가 되기보다는
'충분히 좋은 존재(good enough)'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보았다.
오히려 아이는 부모의 불완전함을 경험하면서 현실을 인식하고,
자기 조절과 독립성을 배운다는 것이다.
또,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부모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며,
아이에게 보다 공감적인 태도로 반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즉,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만큼,
아이의 감정도 더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나를 돌보고 있는가?
아이의 진심이 담긴 말 앞에서 나는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나도 사랑받고 싶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어제 밤새 뒤척이다, 오늘 아침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엉망이어도,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저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잔소리 없이 등교시켰다.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에 결국 또 내가 약자가 된다.
다음번 글에서는
"엄마를 제일 사랑해"라는 글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