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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균 Jul 22. 2017

악의가 게이미피케이션을 만났을 때

새로운 동기부여 방법을 바라보는 일부 의사결정권자들의 무서운 생각

이글은 꽤 오래전부터 망설이다가 쓰는 글이다.
좁게는 게이미피케이션, 넓게는 새로운 동기부여 방법을 바라보는 일부 의사결정권자들의 무서운 생각을 이야기 해본다.

게이미피케이션을 도입하려는 교육분야 종사자 & 업무프로세스 관리자들을 다양하게 만나다보니, 상당수의 경우에 그릇된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게이미피케이션을 시도하는 게 보인다.
‘그릇된 목표와 목적’은 많이 순화된 표현이고, 나는 이들이 품고 있는 ‘악의’가 우려된다.  


교육분야 종사자들이 게이미피케이션을 악용하려는 접근은 이렇다.
하나, 이미 공부하는 시간 이외에 개인적 자유, 여가가 없는 아이들의 잠자는 시간, 짧은 대화시간마저 뺏어서 공부 시간을 늘리려는 수단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을 이용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더 날카로운 경쟁으로 몰고 간다. 게이미피케이션 목적은 공부의 과정을 즐겁게 바꿔주는 것이지 더 오래 공부하게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둘, 교육 콘텐츠의 부실함을 시끌벅적한 웃음과 땀냄새로 감추려고 한다. 학습목표를 온전히 나열하지 못하는 교육 게이미피케이션 콘텐츠는 단지 게임일 뿐이다.
셋, 문제를 풀면, 정답을 맞히면, 공부를 끝내면, 게임을 시켜주는 구조. 이것은 게이미피케이션이 아니다. 공부는 고통이고 게임은 그 고통을 견뎌낸 인내에 대한 보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줄 뿐이다. 즉, 게임자체를 보상으로만 제시하는 구조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아니다.


업무프로세스 관리자들이 게이미피케이션을 악용하려는 접근은 이렇다.
하나,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마른 수건 같은 직원들을 더 쥐어짜기 위해 게이미피케이션을 채찍으로 이용하려 한다. 재미를 이용해서 직원들을 무한정 쥐어짤 수 있다는 망상을 하고 있다. 나른해진 직원들에게 게임의 재미로 에너지를 넣어주는 게 게이미피케이션의 역할이다. 탈진한 직원들을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살려내지는 못한다. 
둘, 직원들의 노동과 고생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규모의 보상을 책정하고는 그 부실함을 게이미피케이션으로 감추려고 한다. 공정성이론, 기대이론, 욕구위계이론, 뭐 이런 것을 논하지 않더라도 기본적 보상은 충족되어야 하고, 게이미피케이션은 그러한 보상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동되는 것이다. 최저 시급을 안 주면서, 뱃지와 포인트만 뿌린다고 해서 근로자가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셋, 조직의 비젼과 목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직원들이 목표의식을 갖기를 기대한다. 직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게임과 현실을 온전히 구분한다. 
넷, 절대로 수평적이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를 게이미피케이션 내에 존재하는 게임적 아바타와 피드백 요소로 물타기하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일부일지라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흙탕물이 때로는 꽤 멀리 퍼진다.
온전한 게이미피케이션을 꿈꾸는 분들의 어깨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지만, 우리가 함께 풀어갈 숙제라는 생각으로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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