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방법을 그대로 유지하면 현상은 유지되는가? 현상유지 편향의 함정
요즘에 만난 몇몇 기업의 HRDer들이 공통적으로 군대 얘기를 꺼냈다.
내가 만났던 분들은 군대 경험이 없는 여성분들이었지만.
“우리 기업의 교육 방식은 딱 군대의 집체 교육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민망한 미소와 함께 이런 얘기를 하셨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현재 그 기업의 교육 프로그램에 관해 더 물어볼 것도 없다.
나는 병역특례를 했기에 실제 부대에 있던 건 훈련소 한 달이었지만, 그 기간만으로도 군에서의 교육이 어떤지는 대략 경험했다.
물론 이게 거의 20년이 다 돼가는 경험이어서, 지금은 그래도 좀 바뀌었으리라 기대는 하고 싶으나.....
여하튼 내가 경험한 군대 교육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바둑판식 의자에 비좁게, 각을 잡고 앉아서 TV에 틀어놓은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는 형태였다.
그 순간 나는 사람보다는 공장식 양계장의 닭과 같았다.
그 교육을 회상하면 내용은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육체적 고통(비좁고, 냄새나고, 움직이지 못하고) & 정신적 고통(단순하고 지루한 정신 수양 내용을 참고 들어야 하는)만 되살아나서 불쾌해지기만 한다.
###
다시 기업 HRDer얘기로 돌아가서.
최근 만난 기업, HRDer들의 고민은 비슷했다.
현재 해당 분야에서 글로벌/국내 톱이지만, 엄청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위기의식 -> 변해야 한다는 절박함 -> 변화의 중심은 사람 ->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 -> 혹시 게이미피케이션을 접목한다면?”
대략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나를 컨택했다.
그러나 이 뒤에는 불안감 하나가 더 붙어있다.
“혹시 게이미피케이션을 접목한다면? -> 괜히 바꿨다가 나(HRDer)만 망하는 거 아닌가?”
충분히 공감하는 고민이다.
우리 문화가 잠자코 있으면 중간은 가는데 변화를 시도하면 중간도 못 가는 경우가 많아서,
게이미피케이션 콘텐츠를 HRDer조차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마주 앉아 이야기 하는 내(김상균 교수)게 어마어마한 인지도나 후광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머릿속에 사다리를 그려보세요. 그 사다리에는 10개의 발받침이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10번째 발받침에 올라선 상태이고, 가장 형편없는 교육은 1번째 발받침에 올라선 상태라고 가정해보세요. 현재 귀사의 교육 프로그램은 몇 번째 발받침에 올라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대화 초기에 나타난 민망한 미소를 다시 보이며 보통 3~4번째 정도를 얘기하신다.
나 혼자 맘대로 짐작하건대 1~2라고 얘기하기는 자존심이 상하고, 5~6이라고 얘기하기는 양심에 걸렸을 테다.
“꼭 게이미피케이션이 아니어도 괜찮지만, 새로운 방법, 새로운 교육 기법을 접목하면서 9~10번째 발받침을 기대하고 계셔서 결정하기 어려운 듯합니다. 최소한 5~6이상은 될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보다는 한결 좋아지는 것이니 작은 부분부터 해보시면 어떨까요?”
대략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
###
우리는 현재가 썩 마음에 안 들어도 통상은 그대로 머물고 싶어 한다.
행동경제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Default Bias)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누군가 변화, 혁신을 얘기하면 현재보다 압도적으로 좋아지기를 기대한다.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
변화, 혁신에는 잠재적 리스크가 있으니, 성공 시의 기댓값은 매우 높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것은 “과연 현재 방법을 그대로 유지하면 현상은 유지되는가?”이다.
조직의 경쟁력, 문화, 성과는 후퇴 중인데, 현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국내 대학들이 대부분 그렇다.
큰 변화, 혁신 없이 대학 시스템을 수 십 년 이상 이어오면서, 꾸준히 후퇴 중이다.
###
또다시 기업 HRDer얘기로 돌아가서.
“걱정되시면 우선 함께 일하시는 HRDer분들 15~25명 정도가 교육 게이미피케이션 콘텐츠를 체험해보고 고민해보세요.”
내가 드리는 조언이다.
스스로 경험해서 느끼고 생각해보면 된다.
스스로 경험했는데도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겠다면,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