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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균 Oct 18. 2020

메타버스: 말하기를 다시 배워야하는 세상

잡코리아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성인 중 절반 정도가 전화로 음성통화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콜포비아(call phobia)’라고 합니다. 여기서 포비아란 일반적으로 그리 위험하지 않은 상황인데, 필요 이상의 공포심을 느끼는 증상을 의미합니다. 즉, 누군가와의 실시간 음성통화를 몹시 두려워하는 감정이 콜포비아입니다. “젊은 친구들이나 그렇겠지!”라고 생각하셨다면, 오해입니다. 대학생과 직장인 집단에서 콜포비아 비율은 큰 차이가 없게 나타났습니다. 전화기에 대고 듣고 말하면 그 뿐인데, 무엇을 두려워할까요? 겉으로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니까 콜포비아가 생기는 듯해도, 깊게 들어가면 여기에는 두려움과 선호도의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두려움은 듣고 바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본인이 실수를 했던 경험 또는 실수를 할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실수로 말을 잘못하거나, 바로 답하는 상황에서 거절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등입니다. 반대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통화하다가 문제가 생길까봐 꺼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상대방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선호도면에서 보면, 음성통화 이외의 소통방법인 문자, 메신저(소셜미디어), 이모티콘(소셜미디어), 투표(카카오톡의 투표), 보기 선택(음식주문 앱의 메뉴 선택), 상태 메시지(메신저 상태창), 채팅(온라인 게임) 등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통화를 꺼리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배달 음식을 통화로 주문할 경우, 인사를 나누고, 주소를 알려주고, 음식을 고르고, 결제방법을 정하고, 다시 이런 내용들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앞서 얘기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등에 관한 우려까지 더해져서, 통화를 꺼리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서로 멀리 있으면 전화통화가 제일 편하지.”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래서 다른 메타버스에서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지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같은 시간대를 살아도 서로 온전히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서로 다른 메타버스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에서의 소통은 크게 네 가지 측면으로 나뉩니다. 첫째,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가?’입니다. 이 관계는 네 종류로 나뉩니다. 

● 1:N의 소통 – 한 명이 말하고 나머지 모두가 듣는 방식입니다. 한 명이 연설하고, 나머지가 듣는 경우를 생각하면 됩니다.

● N의 소통 – 소통에 참가하는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고, 표시한 의견을 그대로 모두 보여주거나, 일정한 형태로 가공하거나 요약, 정리하여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단체 대화방의 투표기능, 게시판 등이 이에 해당 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내가 올린 글에 내 친구들이 의견을 남기는 경우는 1:N의 소통 결과에 대해 친구들이 N의 소통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 n의 소통 – 전체를 여러 개의 소그룹으로 나누고, 소그룹 내 구성원끼리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는 경우, 회식자리에서 자연스레 집단이 나눠지며 대화가 분화되는 경우 등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 1:1의 소통 – 말 그대로 단 둘이 얘기하는 경우입니다. 둘만의 일회성 소통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N이 6명이고 모든 구성원들이 1:1의 소통을 진행한다면 총 15번(6*5/2)의 1:1 소통이 발생합니다.

둘째, ‘소통 시 가면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소통을 익명, 실명 중 무엇으로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날로그 지구에서 우리가 하는 대부분 소통은 실명 기반입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길을 물어보는 상황도 깊게 보면 완전히 익명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다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지구, 메타버스에서의 소통은 익명의 비율이 확연히 높습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분들끼리, 같은 취미를 가진 분들끼리 참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익명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 같은 가상 세계에서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가면을 씌워줘라. 그러면 진실을 말할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메타버스에서 익명 소통이 가진 의미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물론, 익명 소통은 많은 역효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른 챕터에서 다시 얘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셋째, ‘시간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할지, 비실시간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아날로그 지구의 소통은 기본적으로 실시간을 중심으로 작동합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사람들이 콜포비아 증상을 보이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소통의 실시간성입니다. 메타버스에서는 아날로그 지구보다 실시간 소통의 비율이 많이 낮아집니다. 카카오톡에 절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기능, 또는 없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기능이 무엇인가요? 대학생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카카오톡 최종 접속 시간을 보여주는 기능이 안 생기면 좋겠다. 메시지 작성 중임을 보여주는 기능이 안 생기면 좋겠다. 메시지를 안 읽었음을 나타내는 숫자 1 표시기능은 사라지면 안 된다.’ 등의 의견이 많았습니다. 실시간 소통에서 느끼는 피곤함을 대변하는 요구사항들입니다. 

넷째, ‘나의 메시지를 어디에 담을 것인가?’입니다. 앞서 콜포비아를 설명하면서 얘기했던 음성통화 이외의 소통 방법인 문자, 메신저, 이모티콘, 투표, 보기 선택, 상태 메시지창, 채팅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좋아요, 싫어요, 슬퍼요, 힘내요 등의 이모티콘 버튼은 우리의 소통을 짧은 기호로 대신해주고 있습니다. 문자가 없던 원시 시대에 인류는 간략한 그림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는 몸짓으로 의사소통합니다. 문자가 있는 시대, 사용하는 언어가 같은 사람들끼리 기호로 의사소통하는 상황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축하한다는 말, 힘내라는 말을 적자니 조금 귀찮을 때 버튼 클릭 한 번으로 편하게 메시지를 보내고, 메시지를 받는 사람은 더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와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에서는 다양한 소통방법을 통해 소통의 양과 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에서 다른 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 속에서 말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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