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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Jul 18. 2022

3년 만에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조재


3 만에 서울시청광장에서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재개됐다. 혐오 세력의 사운드는 여전히 빵빵했고, 광장을 찾은 퀴어와 앨라이들로 내부는 북적북적했다. 부스 구경은 커녕 일행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본격적인 퍼레이드를 위해 대기하는데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쓴 사람들, 우비를 입은 사람들, 그냥 비를 맞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와아-‘ 비명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광장을 빠져나가는 사이 비는 더욱 거세졌다. 덕분에 함께 이동하던 일행들을 놓쳐 버렸다. 걷는 동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중도 포기하는 일행도 생겼다. 트럭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그냥 빗길을 걷는 시민 1과 같은 상태로 길을 걸었다. 회사일 때문에 노트북이 들어있는 묵직한 백팩을 메고 걸었는데 이 정도면 국토대장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역대급으로 힘든 여정이었다. (병이 나서 노트북은 꺼내보지도 못했다는 후문)


흩어진 일행들을 찾기 위해 중간에 멈춰 비를 피하며 연락을 시도했다. 어디냐고 묻는 물음에 ‘어딘진 모르겠지만 아까 종각역을 지났다.’고 대답했다. 정확히 거기가 어디니, 종각역을 지났으면 어디서 만나는 게 낫겠다, 몇 호선을 타고 이동할 거다 등등. 일행이 말했지만 나는 서울 지리를 모른다. 생각해보면 퍼레이드 루트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니, 구체적인 장소감각 없이 텍스트로만 안다고 표현하는게 맞겠다.


나야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이 길거리에 대한 추억은 고작 지나온 퀴퍼 정도지만, 서울의 지리를 잘 알고 많은 추억을 쌓아온 사람들에게는 이 퍼레이드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겠구나, 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직접 느껴본 감각이 아니라 추측만 해볼 뿐인데, 내가 사는 강원도에서 퍼레이드 했을 때의 느낌과는 또 다른 것일 거라 짐작했다. 강원도에서 퍼레이드 한다? 사실 그건 공포에 가까운 경험이니까. 길을 다니는 사람 중 일부가 나를 알아볼 확률이 90에 수렴한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아무튼 이 퍼레이드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만큼 다양한 감각을 가질 테다. 같이 흠뻑 비를 맞고 걸으니 같은 걸 느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이 당연한 걸 왜 이제 깨달았지.


서로 다른 감각으로 이곳에 존재한다는 게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감각이 한날한시에 모이는 것이니 더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일이다. 다만 나는 나의 감각을 이야기할 뿐이다.


내가 아는 서울의 몇 안 되는 상징물이 눈앞에 펼쳐질 때 서울 도로를 점령하고 걷고 있다는 쾌감, 진짜 별난 사람들이 많구나 싶은 유쾌함(+강원도에선 내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될까 싶은 의문), 혐오세력과 함께 ‘오세훈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는 아이러니함, 다 같이 비를 쳐맞으며 개고생 하니 즐겁다는 좀 변태 같은 기쁨 정도.


좀 허접한 감상이지만 총체적인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2014년부터 시작된 나의 지난 퀴퍼참여 연대기를 적을 필요가 있다. 퀴퍼가 마냥 유쾌하고 해방감만을 주는 건 아니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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