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그곳을 다시 찾은 시간

아주 오랜만에 찾은 제주에 관하여

by 감자밭

고작 제주도. 16년 전 처음 그곳 여행을 떠났을 때 내 머릿속에 떠 오른 느낌은 '고작'이었다.

신혼여행인데, 남들처럼 유럽이나 하와이, 괌으로 떠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하는 일이 바쁜 것도 있었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그 '눈치' 때문에..

아무도 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절제한 그 선택이 지금까지의 내 밥벌이 생활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그 시절, 아무렇지 않게 해외로 신혼여행 가는 사람도.. 심지어 개인여행으로 해외에 가는 사람이 없지 않았는데, 왜 나는 '쓸데없이 바람직한' 선택을 했을까?

내 아내는 참 무던히도 제주도 신혼여행을 받아 주었더랬다.


다시 그곳을 찾는데 걸린 시간은 또, 16년이다.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 먹는 '신라 라면'이 그리도 맛나다는데.. 프랑스 파리의 그 유명한 관광지들 가보면 참 지저분하고 별 거 없다던데.. 하는 이야기를 또 '이야기'로만 들으며 16년을 흘려보냈다.


어느 날 아내의 가쁜 목소리(일단 뭔가 흥분되는 일이 있을 때 내 아내의 목소리는 가쁘다)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여보 우리 성당 자매님들하고 양양공항(우리는 지금 양양에 산다)에서 비행기 타고 여행 가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번 가볼까? 나 가도 돼?"

'가도 되지 이 양반아.. 그거 뭐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흠칫 놀랬다. '여행..? 이야~ 여행?'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아내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여보.. 혹시 여보도 갈 수 있으려나? 제주 가기로 했어. 여보가 가도 된다 했잖아..." 그때, 그 여행이라는 것에 '나'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알 수 없는 떨림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 나도 한 번 가보자. 푸르메* 가 살고 있는 곳!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도 나무(야자수)' 있는 그곳으로!


일정을 다 잡고 나니 우리 직장 보스께서 내가 제주 여행을 계획한 그 기간에 윗 분들이 오신다는.. 참.. 거시기한 내용을 얘기해 주었지만.. 뭔가 아련한 게..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사실 안 들렸다면 이렇게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ㅎ)

또, 일정을 맞추려다 보니 근무며 대기를 좀 화끈하게 당겨서 해당 기간에 확실히 여행을 갈 수 있는 '여건 보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부터 여행 갈 때까지 집에 몇 번 못 들어갔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은 추운 날 발그레 한 아이 볼 마냥 감출 수 없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기의 일을 스스로 하는' 역동적 내 모습...!

그렇게, 제주행 '플라이 강 O'에 몸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초상권이 있지만.. 자매님들 '마기꾼'이라 못 알아보겠네요. 그리고.. 어린 왕자 사는 별(B612)에서 보정을 확실히 해 주었네요 ^^


큰 결심 했지만 바다를 화끈하게 건너지는 못하고 '바다 조금 건넌 <해외> 제주도'...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조종사인 내가 촌스럽게도 무서움을 느끼고 있었다.

남이 해준 밥은 맛나지만, 남이 조종하는 비행기는 무서운 것인가... ㅎ

아내가 운전하는 차 옆자리에서 있지도 않은 가상의 엑셀이며,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나처럼.


한 시간여가 지나 도착한 제주에서 하루 전 제주에 넘어와 계셨던 신부님과 만나 갈치며 회덮밥 즐겁게 비워내고 '이시돌 성지'에서 십자가의 길도 가고 목장에 노니는 '제주도 말'도 보았다. 아쌈(awesome)한 아이스크림을 '제주도 바람' 맞으며 맛보았다. 녹차 키우는 'O설록' 지나 숙소에 짐 풀고 '제주도 돼지' 먹는 식당에도 갔다.

역시 소주는 제주 '한O산 21도', 고기는 '제주 돼지'다. 그 시간부터 난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한 잔 두 잔 비워내는 소주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오랜만에' 찾은 자유를 만끽하며 속 깊은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것 신이나 떠들었다. 같이 간 자매님들(우리 성당 다니는 아이들의 엄마, 항상 일에 치여 사느라 바쁜 남편들의 아내들)의 마스크 속 해맑음을, 볼 빨간 자유를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후 도착한 숙소에서는 각자 숨겨놓은 끼를 폭발시키며 얼마 전 전역하고 트로트로 '날리고' 있는 가수의 '한잔해~'를 목 놓아 열창했다. 동행들과 내 마음속의 알 수 없는 실타래와 묵은 아쉬움들이 시원한 '제주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만 같은 '해방의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전 날의 여운이 남아 돌덩이처럼 무거운 머리를 베개에서 힘겹게 떼어내고 숙소 근처 '섭지코지' 해안으로 나가 '성산 일출봉'을 보았다. 걸어가는 동안은 '아이고 머리야.. 뭐 꼭 여길 봐야 하나..' 생각했다.


결과는 "사진은 '성산 일출봉'이지!" 라며 먼저 떠들고 다니는 내 모습의 발견.

그 시간부터 난 사진은 '성산 일출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 사진은 성산 일출봉이다.

속풀이 라면을 파는 '덜떨어진 친구네 라면집'(상호를 밝힐 수 없어 아쉽다)에서 극강의 미각 행복을 누리고 (낮술도 한잔하고) 자매님들이 노래 부르던 '브런치'집에서 빵이며 맛난 커피를 마셨다.

제주의 산림욕 명소 '절물 자연휴양림'에서 산책하며 제주 '삼O수'의 유래와 효능을 알게 되고, 코 끝을 간지럽히는 숲 내음에 힐링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러다 숙소 잡고 마주한 '천당의 계단'(정확한 이름을 밝히지 못해 역시 아쉽다)..

'천당의 계단'

한 계단 한 계단 소중하게 즈려 밟다보니 '코알라'가 되었고, 어느새 '노랭이 통닭'을 손에 들고 숙소로 향했다. 속 깊은 이야기, 살며 느낀 아쉬움과 스트레스, 아이들 이야기 등등..

제주의 푸른 밤이 그렇게 채워졌다. 밤을 지나 새벽까지..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흔하디 흔한 경험일 게다. 제주에 여행 한 번 다녀오는 일은.

하지만 나에게는 그간의 보상이자 이제는 나도 이런 시간쯤 누릴 수 있다는 '마음속 허락'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망설이고, 뒤로 미루기만 했을까?

이제 '노빠꾸'다. 가족들 손 잡고 스위스 그 높은 산에서 '신라 라면'도 먹어보고, 괌이며 허와이(하와이라는 발음은 촌스럽댔다)도 가고 하면서 많이 비어 있는 내 삶의 빈 캠버스를 채워 나가야겠다.

오순도순 식사하며 '그때 거기서 그랬지'하는 시간들을 채워 나갈 것이다.


- 제 삶의 푸르른 한 순간을 함께해 주신 신부님과 자매님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 푸르메(푸르매) : <제주도의 푸른 밤> 원곡을 부른 들국화 멤버 최성원 씨가 당시 제주도에 살고 있던 지인의 딸인 '김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쓴 표현. 최성원 씨에 따르면 '푸르메'가 아니고 '푸르매'이며, 지금은 나이가 서른도 훌쩍 넘은 분이라고. 놀랍다.. <아래 링크 참조>

Http://news.v.daum.net/v/20131120222507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