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惡緣)

악연도 연이다

by 감자밭


어릴 적에는 참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훌륭한 삶은 '성공'해서 모두의 '우러름'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 '성공한 사람'이란 것은 이 세상에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었다.


놀랍도록 뒤늦은, 그래서 더 놀라운 발견이다.

아니, 이제 와 느끼는 뒤늦은 소회(素懷)다.

살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모두가 '어설피 살고 있는 중생(衆生)'일 뿐이라는 것.


살다 보면 누군가가 무척이나 성공한 듯 보이고, 그 삶이 내 삶의 지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 그가 그리 보였다.


나는 누구보다 얼른 성공하고 싶어 숨도 쉬지 않고, 단 한 번 의심 갖지 않고 그 방향으로 뛰었다.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이'를 맹목적으로 좇다보면 잘 모른다.. 그 길, 막다른 골목일 수도 있다는 것을.




'성공'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그 성공이라는 것에 '가까운' 이 들에게 채널(주파수)을 맞추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힘들고, 어려운 그 과정 그리 버텨냈다.

혹 너무 버거울 때는 나 보다 처진 이들을 보며 입가를 씰룩였다.


못 따라오는 사람, '우리'의 방식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을 내가 터득한 그 방식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열등하다 여기고 살아왔다.




이것은 그간 살아온 내 삶의 고백이다.


'세상에 누가 저런 어처구니없는 삶을 살까?'라고 생각했던 내가 겪어 낸 이야기다.

흔한 드라마를 보며 '야, 누가 저리 어리석게 사나? 제 한 몸 불타는 줄 모르는 저 불나방처럼 어리석게 말이야.'


어리석게도 내가 욕했던 그대로. 그렇게 살았다.

아니, 그리 살고 있는지 조차 모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오늘, 지난 악연(惡緣)으로 참 힘이 들었다.


그 이가 나에게 한 모든 행위에 몸서리쳤다.


그리 힘들게 지내던 오늘, 귓가에 들려온 그 이의 처참한 실패.


몹시 달았다.


그이의 실패가 너무 달아서 '꺽꺽꺽' 웃었다.




웃다 보니, 조금은 억울한 헛헛함이 몰려왔다.


적어도.. 그에게 정서적으로나마 동조한 시절이 분명 있고, 그의 성공에 취해 나는 누구보다 앞장서 그의 방식으로 뛰었으니까.


나 보다 못하다 생각한 이를 나 스스로 업수이 여긴 시간이 분명 있었으니까.


한 때, 나는 그의 동조자(同調者)이자 협력자(協力者)였으니까.


돌아서는 내 입맛이 썼다. 혓바닥을 스치는 돌덩이가 까칠거렸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헛헛함으로, 깊은 생각 뒤에는 '자책(自責)'과 후회(後悔)로...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나의 어설픔, 그 어설픈 동조와 뒤 늦은 후회가 이 바람에 씻겨 나가길..

이 악연(惡緣)의 버거움을 걷어 낼 수 있기를...




그러나 결국, 악연(惡緣)도 인연(因緣)이다.


그래서 이 아픈 시간 그저 바람맞으며 속절없이 보내고 있다.


내 곁에 있는 어느 누구도 이 헛헛함의 원천을, 이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오늘, 내 악연(惡緣)의 실체를 목도하였고, 또 그리하여 슬프다.


누군가 한 없이 욕하고, 일갈(一喝)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나의 어리석음에 더 깊은 회환이 밀려온다.


지금, 그이와 무채색 털실로 엮여 있는 내 팔목이 몹시 욱신거린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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