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딩동' 소리에 문득 집어 든 휴대폰에 적혀 있는 글자들을 보고 오늘이 내가 군에 입문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실눈으로 언 듯 본 동기생의 문자 내용을 몇 초간 응시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20년.. 나는 무엇으로 살았던 것일까? 젊다 못해 앳된 그때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한동안 그 옷만 입는다. 왠지 편안함과 무던함이 느껴지는 옷들, 내가 보기에 나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접할 때면 '이거 한 열 벌 사서 매일 입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아내가 "너무 한 가지 옷만 입는 거 아냐? 교복이네, 교복."라고 말할 때가 있을 정도로...
그럴 때면 "아니, 피부야 피부." 하며 응수하곤 하는데, 나라는 사람 원래 그렇다. 익숙함과 편안함이 멋들어짐 보다 항상 먼저다.
20년간 걸어온 그 익숙함을 되내어 보니, 그 첫 만남은 꽤나 대면 대면하고 어색했던 것 같다.
맞지 않는 군복, 뒤꿈치 까질 듯한 그 전투화며 기계처럼 돌아가는 사관학교의 첫인상은..
군복에 몸을 맞추고, 전투화를 길들이고, 내 생각과 행동들을 규율에 맞추다 보니 어색함이 익숙해졌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시나브로..
시간의 흐름은 맞지 않던 군복을 '피부'가 되게 했고, 군복은 굳이 내가 열 벌씩 사놓지 않아도 매일 입는 옷이 되었다. 그렇게 '익숙함'을 맞이했다.
익숙한 옷을 입고,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일을 치열하게 해 내며 살았다.
때론 달고, 때론 쓰고, 한동안은 또 아팠다.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내달리다 보니 '헉헉' 숨이 차오르는데, '이 길에는' 더 갈 곳이 없다.
요사이 '정년'이라는 단어, '연금'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가 많아졌다. 동시에 '이제'라는 말과 '어떻게', '뭘'하는 단어들을 입밖에 자주 내게 된다.
그렇게 '익숙함을 벗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내게 다가왔다.
익숙함이 다가왔을 때처럼,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그래, 시나브로..
당장 어제 먹은 저녁 메뉴도 굳이 떠올리지 않으면 잘 기억나지 않는 요즘, 내 '다음 익숙함'이 무엇일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지향하는 바는 있으나, 20년 전 그때처럼 무언가 확실하지만은 않은, 내 눈앞 이 뿌연 '안개'를 마주하는 일은 어색하다. '아빠'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 좀 두렵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 옷 안 갈아입으면 병난다. O희야(누나) O동이(감자밭) 옷 갈아 입혀라~!"
그래 갈아입자.. 뭐가 내게 맞는 옷이고 무엇이 나를 새로운 익숙함으로 안내할지 아는 바는 없으나, 한번 골라 입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