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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밭 Apr 01. 2022

친구에게

환절기를 맞은 친구에게 보내는 짧은 글

[오늘, 이 지면을 채우는 모든 이야기는 오롯이 내 친구에게 전하는 제 마음입니다.]




코 찔찔이 사관생도 때부터 보아오던 이 친구는 중위 때 조종사 양성과정(지금은 항공장교 양성과정)에 같은 방을 배정받으면서 깊은 정을 나누게 되었다.

낯선 방안에 동기와 둘이서만 맞은 첫날이 기억난다. 사관학교 동기 이기는 했으나, 가까이 대면하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으니까.

선이 굵고 뭐든 표현이 확실한 나에 비해 그는 조심스럽고, 배려 깊고, 무엇보다 진중한 친구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를  놀리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뭐 좀 같이 하자고 선동질(대체로 치킨 시켜먹기, PX 가기 같은 것들)도하고, 하며 약간 '데리고 산다'는 느낌으로 대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누가 누구를 케어하고, 데리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간간히 '우렁각시'가 다녀간 듯한 상황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사관학교 생도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정확한 시간에 학교 뜀걸음 코스를 뛰어다니는 생도가 있었다. 가끔 우리 중대 앞에 나가 있다 보면 그 앞을 뛰어가는 생도를 하나 보게 되었는데, 처음엔 '뭐 쟤는 왜 자꾸 뛰어다니냐?' 하는 생각과 ' 나는 이 고된 생도생활 짜증도 나고 시간도 없는 것 같은데 대단하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나중에는 그의 노력과 열정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 '늘 뛰어다니던 생도', 오늘 내가 짓고 있는 이 글의 주인공이다. 그 의지와 지속하는 능력은 그때부터 눈에 띄었다.

그 시절, 나는 무엇을 했나.. 때때로  '해피연등'이라는 것을 즐겼는데, 이게 '조삼모사'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는 방법이랍시고 고안한 것이다. 방법은 이러하다. 새벽 세시에 연등(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것)을 신청하면 불침번 생도가 시간 맞춰 깨워준다. 그럼 그때 일어나 일단 시계를 본다. '아.. 3시구나.. 오모나~ 무려 세 시간이나 더 잘 수 있네 히히~^^'하며 다시 잠드는 것이다. '잠의 중간 정산' 쯤되는 짱구 같은 이 행동.. 하..

같은 머리로 떠올린다는 것의 급 차이가 이 정도니.. ㅎ


조종사 양성교육이 한창일 때, 우리 방 두 명의 조종학생의 생활방식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는데, 일단 나의 생활 패턴은,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는다. 비가 와야 하루 쉴 수 있기 때문이다.(비 오면 헬기를 못 띄운다.) 이후에 '우유'를 날랐다. 조종학생들이 먹는 우유배달 담당이었으니까.

이후에는 조종교육받고 하며 일과 보내고 호실로 돌아오면 일단 눕는다. 피곤하니까.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에게 전화하고 씻고.. 점호받고.. 이때쯤 피곤해지니 꿀잠 배게 몽골몽골 돋아 놓고 잠이 든다.

이때, 그 친구는 눈 감고 비 맞은 중마냥 MOI(비행절차를 말로 되뇌는 것, 비행 중 실수를 방지하기 위함)를  열심히 했더랬다. 그때쯤 "야.. 기냥 쳐자.. 뼈 삭는다.." 하는 일직 쳐자는 자의 일갈을 견뎌내며..

이 친구는 우리 조종기수 '교육장교'를 맡았었는데, 주로 조종학생들과 교관님들의 연결고리 역할이었다. 교육 준비에서부터 학생들이 준비해야 할 것들 전파해 주고, 교보재 챙기고, 일정 챙기도 하는 힘든 일이다. 첫 입교 날 이 친구가 손을 들고 맡은 '보직'이다. 이때 내 '보직'은 우유장교. 손 들었다 나도.


<동거하던 시절>


조종사 양성과정 중에 내가 몸이 몹시 아픈 적이 있어서 수업도 못 듣고 심지어 논산 국군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 친구가 물심양면으로 또 도와주었다. 빠진 수업 정리 내용, 내가 없는 동안 한 비행한 것들(비행은 교육과정이 빡빡해서 앞으로 뭘 하게 될지도 중요하다.)도 알려주고 먹는 것, 자는 것 다 수발해 주었다.

그런데다 나는 기초비행 실기에서 한번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곁에 있던 친구에게 자극받아 이후 비행에는 나름 열심히 임했던 것 같다. 잘하는 모습 흉내 내 보려는 정도였지만.


어찌어찌 조종사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야전으로 배출되게 되었을 때, 국군병원 입원으로 수업일수도 부족한 데다 내 친구만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 터라 나는 우리 조종 기수 인원수만큼의 등수로 우수운 성적을 받았고, 그 친구는 세 손가락 안에 들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은 그 친구와 떨어져 있었다.


장교로 복무한 이들은 모두 알겠지만, 대위에서 소령 진급할 무렵에는 '보직'이 아주 중요하다. 쉽게 말하면 '교육장교'해야 할 때에 '우유장교'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우유장교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자면..

나는 그 중요한 시기에 포천 이동면에서 근무했다. 상급부대 주요 보직에 있어도 진급이 될까 말까 하던 시절에 전방 말단 부대에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차저차 하니 좀 괜찮은 자리 없냐고 농담 반 건넨 말에 응답이 왔다. 사령부에 자리가 있다고 지원해 보라는 답변이었다. 그때부터 여기저기 전화도 하고, 그야말로 '유세'를 한 덕분에 사령부 보직을 할 수가 있었다. 짧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때 마음고생도 상당했다.

막상 사령부에 보직하고 보니,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그 친구가 내가 여기 사령부로 오게 되면 경쟁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추천해 주고, 여기저기 나에 대한 좋은 평도 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 주변 한 선배는 "동기가 오면 불편할 일이 많고, 경쟁도 해야 할 텐데 괜찮겠어?"하고 물었다 한다. 내가 보직했을 당시 내 주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한 두해 지나, 이번에도 친구의 배려로 진급하게 되었다. 전방 말단 부대에서 고생한들 따내기 힘든 그 진급이라는 것을 말이다. 기쁜 사실은 내가 그 친구와 함께 진급해서 같이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

이 친구와 이천시내에서 수다 떨며 속풀이 했던 것 역시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추억이 되어 주었다.


소령이 되어서도 연락하고, 가끔 만나 속 깊은 이야기 나누었다. 어느새 이 친구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믿을만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항상 자기주장 강하고 대가 센 나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곤조곤 조언해 준 이 친구가 지금까지도 너무 고맙다.

비록 나는 중령 진급에 실패했지만 이 친구가 진급했기 때문에 기뻤다. 그럴만한 친구라고 인정하고 있던 터였으니까. 꼬꼬마 시절부터 나 보다 오래 이 친구를 겪고 아는 동기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좀 색다른 관계로 같은 부대에서 함께 하고 있는데, 내가 쓰는 글에 가끔 등장하는 '직장보스'가 바로 이 친구다.(보스님 보고 계신가요?? ㅋㅋㅋ)

친구가 대대장으로 있는 부대에 부지휘관으로 숟가락을 얹고 지내고 있다.

지금도 변함없이 무한한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 주어서 제2의 인생 준비하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 편으로는 너무 받기만 하는 것 같은 미안함이 앞선다. 그래서 가져보는 조그마한 소망은 나도 언젠가 이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친구가 대대장을 마치고 다른 보직으로 가게 된다. 지휘관도 힘든 보직이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참모 직위로 가 고생할 텐데, 도움 많이 못 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고맙고 그렇다.

잘 나가는 동기생이자 친구이지만 그의 마음에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이 또 얼마간은 부담으로 다가올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글로 몇 자 적어 붙이는 일이니 또 아쉽다.


하지만..


어찌 보면 생의 전환기, 그의 군 생활의 환절기를 맞은 친구에게 요즘 잘 나가는 드라마 대사를 좀 빌려 말해 주고 싶다. 비록 곁에서 별 도움 못 주는 친구지만, 다가오는 새로움에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환절기는 애매하다. 옷을 두껍게 입기도, 얇게 입기도. 뜨거운 것을 먹기도, 차가운 걸 먹기도 망설여진다.

그래서 설명할  없는 지금  감정이 보내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인지 새로운 계절에 대한 설렘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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