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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밭 Jun 06. 2022

깨갱하는 용기

우리 시대의 모든 꼰대들에게

어느 조직이든지 간에 살아남으려면 그 조직에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적응이라는 것은 대체로


먼저 그와 같은 경험을 했던 선배들이 갔던 길이나 생각에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다.


그렇게..


한 조직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꼰대'가 된다.


내가 근무하는 부대는 08시 30분이 되면 신고를 한다.

비행임무 신고도 하고 근무자 신고도 하고 배차신고도 한 자리에서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집합이 늦었다.

08시 29분쯤 신고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자리가 한 두 자리 비어 있는 모습을 보고, 부지휘관인 나는 순간 고민했다.

'뭐라 한 소리할까? 아니면 도착하신 지휘관에게 이러이러해서 좀 늦는다 할까..?'

그러던 차에 신고 대상자 한명이 오고 있었다.

늦은 것은 아니지만, 이내 지휘관이 도착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그를 지시하며 말했다.

"비행? 오늘 비행?"

그때, "아.. 부대대장님 손가락질이 뭡니까..? 이렇게 손바닥으로 가리키면 되지.."


당황스러웠다.


내가 손가락으로 그 사람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무어라 했겠는가?


"어.. 대대장님이 오고 계셔서... ㅎ"


사무실에 돌아와 앉았는데, 뭐 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뭐 그게 문제가 될 일이던가..? 흠.. 순간 그리 보일 수도 있겠지... 그래, 뭐든 불편한 일은 조직 내에 없는 것이 맞겠지.. 그래도.. 이게 맞는 건가..? 내가 나이도 많고 계급도 높은데, 이게 맞는 건가..? 아니, 그 사람 입장에서는 불편했을 수도 있지.. 내가 잘 대처한 건가..?'


입 속에 문 사탕처럼 뭐 이런 '라떼' 같은 생각들을 내내 굴리고 있었다.


'라떼' 시절 이야기들과 그때의 여러 일들이 떠올랐다..

'뭐 이런 일로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부터 '그래,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칭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도 불편할 수 있지.. 그걸 삿대질이라 하지 않던가..' 하는 생각까지..

무언가 속이 시끄러웠다.


 그날,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운전하며 생각했다.

'야, 감자밭아. 너는 누가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면 좋으냐? 너는 왜 이따위 생각을 하루 종일 가슴에 담고 있냐? 너도 참 너다.. 너도.. 이러니 저러니 해도 라떼다.. 라떼.. 꼰대말야..'


상대가 누구 건 불편함을 주는 존재여서는 안된다.


그건 상식이다. 더 이상 라떼가 되는 것을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

이렇게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하루 종일 입안에서 굴리고 있던 사탕이 녹아 없어졌다.


시절이 지나, 옷깃에 나도 모르게 옛것이 물들어버리더라도..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에게라도 그가 맞다면 깨갱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우리사회에서 '깨갱할 수 있는 용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용기다. 그 깨갱하는 거..


하루를 살면 그 하루만큼 배우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무언가 완성되는 것이 없는 것이 우리 사람들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아침에 눈 떴을 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모두 실천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그날 잠자리에 들었던 날이 어디 하루라도 있었던가 말이다..


나도 안 되는 것 남에게 '라떼'를 앞세워 강요하지 말자.


집에 오니,  둘째 놈은 게임질 하며 "야! 죽여! 따라와~~!" 하며 헤드셋에다 대고 외치고 있고, 첫째는 "아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하고 자신이 하루 동아 겪은 일을 에둘러 표현하며 나의 안색을 살피고, 아내는 뜨개질 뜨며 곁눈질로 나의 귀가를 살핀다.


그런 거지 뭐, 다..


요즘은 만원에 4캔 맥주가 없어졌다지..

"여보, P.X 갔다 올게~"

그날도, 이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이번 생은.. 하..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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