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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엄마 Feb 07. 2023

보글보글이 쏘아 올린 엄마의 굴욕

  얼마 전 애기들과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보통 여행을 가면 낮에는 주변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어두워지면 리조트 주변을 산책하거나 리조트 내에 있는 오락실이나 노래방을 찾곤 한다. 이번에도 저녁이 되어 숙소에 돌아오자 어김없이 애기들이 낮에 봐두었던 오락실에 가자고 졸랐다. 못 이기는 척 따라가서 나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테트리스'랑 '보글보글'을 한 번씩 했다.


  처음으로 그런 게임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첫째가 그걸 즐길 나이가 된 건지 전에는 관심도 없다가 이번에 내가 하는 '보글보글'을 옆에서 지켜보더니 자기도 하겠단다. 그래서 동전을 넣어주고 옆에서 코치도 해주다가 답답함을 못 참고 급기야는 나도 500원을 넣고 첫째 옆에서 2인용으로 같이 게임을 즐겼다. 엄마가 옆에서 같이 해준 게 좋았던 건지 아니면 게임을 못하는 줄 알았던 엄마가 좋아하는 게임이라 신기했던 건지 그 포인트는 모르겠으나, 전과 다르게 첫째는 '보글보글'을 하는 내내 신이 나서 연신 재미있다고 말했고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서도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흥분을 털어놓았다.


  아직 2G 폰을 쓰는 그녀는 아빠의 휴대폰으로 정해진 시간에 게임 앱을 깔았다가 지우고를 반복하는데, 이번에도 집에 돌아가면 아빠 폰으로 '보글보글'을 꼭 깔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그녀가 그토록 고대하던 아빠의 폰으로 여러 번 그 게임을 깔아봤지만 오류가 생기고 제대로 깔리지가 않았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해서 혹시나 하고 내 폰으로 깔아봤더니 오류 한 번 없이 쉽게 깔렸다. 아빠 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도 마땅치 않아 하며 마지못해 봐도 못 본 척하면서 눈감아 주는 판에, 내가 직접 게임 앱을 깔아서 주는 게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몇 번 만이라며 다짐을 받고 내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첫째는 너무 예쁘게도 약속한 시간이 되자 군말 않고 더 이상 게임을 하겠다고 조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였다. 첫째는 쿨하게 미련 없이 '보글보글'을 잊었는데, 나는 내 휴대폰에 깔린 그 게임이 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내게 '보글보글'은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였다. 집 밖으로 나가면 논이랑 밭밖에 없던 심심한 시골에서 인터넷도 연결 안 된 컴퓨터로 할 수 있던 '보글보글'은 어린 나에게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방울 안에 나쁜 놈들을 하나씩 넣어서 터뜨리면 평소에 거의 먹을 수 없던 아이스크림이며 케이크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계속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불이나 물이 나오는 십자가, 물약, 방울 기능을 향상시키는 사탕 등 중간중간에 숨겨놓은 장치들도 이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실력이 괜찮은 파트너와 협동을 잘하면 100판도 가끔 깼는데, 그게 그렇게 성취감이 들 수가 없었다.^^ '보글보글'을 하다 보니까 그때를 회상하게 되고, 어린 내가 생각나 씨익 입가에 미소를 띠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 유혹을 못 이기고 애기들의 눈을 피해서 가끔 '보글보글'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며칠 안 돼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첫째가 학원을 가고 둘째는 책을 읽고 있었는지 자기만의 일에 집중하는 것 같아서 안일한 생각으로 휴대폰을 꺼내 '보글보글'을 하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이어폰까지 끼고 열심히 몰입을 했는지 둘째가 가까이 와있다는 사실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게임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고 둘째는 '어... 엄마 게임하시네.'라고 하면 내 곁에 서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휴대폰을 숨기며 '어.. 어..'이러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빼박'이니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나. 창피해서 둘째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있는데 둘째가 마지막 펀치를 날렸다.


"언니한테는 말하지 않을게요."


  그렇게 혼자 바른 척, 어른인 척 다 하고 자기들한테는 게임 한 번 하는 것도 깐깐하게 굴면서 정작 엄마가 몰래 게임을 하는 걸 본 둘째 눈에 엄마가 어떻게 비쳤을까. 쿨하게 한 마디 던지고 돌아서는 둘째 뒤통수를 보면서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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