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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꽃밭은 아파트 공터

꽃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다

by 감성요일
2024년 4월 22일 촬영 ⓒ감성요일




23년 봄.

아파트 공터에 꽃을 가꾸는 용도로 무료분양을 한다는 공지가 붙었다. 작물을 제외한 꽃만 가꾼다는 조건이 있는 분양이었다. 나는 아파트 관리소에 가서 바로 신청을 했다. 실내 가드닝을 몇 년째 하고는 있었지만 정원에 대한 로망이 항상 있었던 터라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 각자의 구역을 분양받은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와 함께 가꾸는 엄마도 있었고 남성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40~60대에 걸친 여성들이었다.


처음에는 각자의 열정을 가지고 씨앗도 뿌리고 모종을 사다가 심기도 하며 자기 취향대로 꽃밭을 가꾸었다. 하지만 여름이 다가오자 땡볕에서 무성해진 잡초를 끊임없이 뽑아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시중을 들어야 하는 고된 정원 일을 버텨내는 이는 몇 없었다.


그렇게 나는 끝까지 남아서 몇 해 전부터 꽃밭을 가꾸고 있던 두 명과 함께 3년째 꽃밭을 가꾸고 있다. 잡초만 무성해진 다른 사람들의 꽃밭은 모두 우리 차지가 되었다. 그곳을 다시 일구어 내가 심고 싶은 꽃과 꽃나무, 허브들을 심었다. 이웃 언니 Y는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 두 가지 종류를 한 곳에 심어 이모작이 가능한 종류를 찾아내기도 했다. 각자의 꽃밭에서 아름다움의 절정에 달한 꽃들을 보며 내가 키운 것처럼 서로 기뻐해 주었다. 끊임없이 꽃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즐거웠고 잡초를 뽑으며 힐링이 되었다.


공들여 심어 놓은 꽃을 뽑아가고 꺾어가는 이도 있었고 열매를 모조리 따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한탄하고, 그리고 웃었다.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은 함께 함으로써 웃음으로 희석되었다.


흙, 꽃, 정원, 자연은
그렇게
나를, 우리를
너그러움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꽃밭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예쁜 꽃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는 그들로 인해 뿌듯하고 감사했다. 선한 마음과 예쁜 말들이 모여 꽃들을 더욱 빛나게 했다.




2025_2_a.jpg 2023년 11월에 모종을 심어 월동한 물망초. 2024년 4월 12일 촬영 ⓒ감성요일


2025_2_b.jpg 만개한 물망초. 2024년 4월 22일 촬영 ⓒ감성요일


2025_2_c.jpg 꽃처럼 화려한 잎을 가진 설악초. 2024년 7월 22일 촬영 ⓒ감성요일




내가 좋아하는 설악초도 마음껏 심어보고 노래 가사에서만 들어봤던 물망초도 두 해째 월동 중이다. 묵은 목화 씨앗도 재미로 심어보았는데 성인 남성의 키보다 더 크게 자라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직 정갈하게 정돈된 정원은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식물의 특성상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기로 했다. 지금 꽃밭에서 쌓는 실전 경험이 언젠가 갖게 될 나의 정원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달팽이와 송충이의 습격, 장마 때 고온다습한 기온을 버티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꽃 때문에 속상한 건 잠시. 목화잎을 고깔처럼 말아서 사마귀가 알을 낳아 놓은 것을 보는 재미도 있고 언제 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비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며 꽃밭에 녹인 시간과 땀이 헛되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노지에서의 가드닝은, 힘들지만 실내 가드닝보다 매력적이다. 이웃과의 소통은 덤이다. 처음 보는 이웃과 스스럼없이 꽃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마음의 담장이 허물어지고 어느새 온기가 느껴진다.


효율을 따지지 않고 순수한 즐거움으로 몰입하는 시간들은 나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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