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만큼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
실내 가드닝을 2019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벌써 7년째다. 그 전에도 가끔 꽃집에서 눈에 들어오는 화분을 데려오고 죽이기를 몇 차례 반복했었다. 내 손이 금손임을 확인시켜 주는 건 오로지 묵묵한 고무나무 뿐이었다. 친구와 서로 선물한 율마도 며칠 내에 말라버렸는데 그땐 통풍이 중요하다는 걸 미처 몰랐다. 그러다가 몇 개의 식물이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가드닝이 시작되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온갖 식물들이 가득했고 구경하며 새로운 이름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웠다. 수형 좋은 모종을 사고 싶으면 양재동 꽃시장으로 갔고 키우기 힘든 꽃은 가끔 절화(折花)로 구입했다. 모종을 사고 토분을 사고 대용량 흙과 *난석을 샀다. 어느 식집사의 남편이 ”흙하고 돌을 돈 주고 사는 거야?“라고 물어봤다고 해서 박장대소한 적이 있다.
집은 어느새
식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창가에 가만히 앉아 ’식멍‘으로 멍 때리기를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발소리를 들으며 크는 식물들은 새싹과 꽃으로 보답해 주었다. 식물들은 점점 크게 자랐고 그 기쁨은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시간이 갈수록 핸드폰 갤러리에는 인물 사진보다 식물과 풍경 사진이 더 많아졌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사물을 보는 눈이 더 깊어져 갔고 그 시선은 식물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마음이 버거웠던 일로 오랫동안 동굴 속에 들어가 있던 나를 조금씩 일깨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시린 겨울을 버티고 돋아나는 새싹들 처럼.
사소한 것들에 눈길이 가기 시작하면서 뜻밖의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난석, 나뭇잎, 돌, 부각까지..너무 사랑스러운 하트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서 사진으로 남겨놓은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분명 가드닝에 대한 일상도 기록해 놓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드닝 초기에는 식물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쐬어주려고 새벽 5시부터 눈이 떠졌다. 여름엔 문단속은 안중에도 없고 밤새 열어놓고 자기도 했다. 어떤 날은 분갈이를 한번에 20개씩 하며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고 토분을 사러 차를 몰고 한시간 가량의 거리를 다녀오기도 했다. 많은 식물을 키워보며 물주는 감각을 늘리고 물꽃이와 삽목으로 뿌리도 내려보고 파종도 해보며 가드닝에 푹 빠졌다.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증거다.
봄에는 삐죽이 솟아나는 새싹들에 환호하고 여름에는 폭풍성장하는 식물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물시중을 드느라 분주하다. 관엽들은 뜨거운 햇살에 가을까지 성장한다. 겨울은 대부분의 식물들은 휴식기라 여유로운 편이다. 남서향이고 저층인 우리집은 일조량이 많지 않고 건조해서 겨울에 죽는 식물들이 꽤 있다. 아직 섭렵하지 못한 식물들에게는 내가 아직도 똥손일 수 있다. 환경을 탓하지 말자.
겨울에는 월동하기 힘든 식물들이 온 집안을 차지한다. 식물들의 최저 월동기온을 확인하며 들여놨다 내가 길 반복하고 나면 내 허리는 한동안 야단법석이다. 과잉보호를 해서 동백의 꽃봉오리가 우수수 떨어지기도 한다. 올해도 스무 개가 넘었던 봉오리가 네 개밖에 남질 않았다. 지금은 아파트 공터를 무료분양 받아서 월동이 되는 식물들을 거의 노지에 심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분이 넘친다.
노지에서 키워보니 실내식물보다는 야생화가, 관엽보다는 꽃이 피는 식물이 매력적이다. 야외에서는 벌과 나비, 바람의 도움으로 자연수분이 많이 되는데 독특한 모양의 씨방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올해는 나눔으로 실내식물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실외가드닝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파종할 씨앗들이 쌓였다. 드디어 봄! 가드너들에게는 가장 바쁘고 설레는 계절이다. 다음부터는 야생화의 매력에 대해서 기록해 봐야겠다.
*난석: 주로 난을 심는데 쓰이는 원예용 돌. 배수성과 통기성이 뛰어나서 흙에 마사토나 난석을 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