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는 무늬를 알아본다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양귀자 <모순>
나는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 본 사춘기도 없었고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무미건조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의견수렴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맡겼다. 당시에는 양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취향이란 것이 없어서 아무래도 좋았던 것 같다. 흔한 말로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었다. 90년대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뉴키즈온더블럭‘이나 ’서태지‘가 나왔을 때도 약간의 취향을 얘기하는 정도였지 흠뻑 빠지는 일은 없었다. 흠 나이가 들통나겠다. 그래도 동안이다. 이런 나로서는 양귀자 소설 <모순>에 나오는 저 문장의 매력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았다. 버리지 못하는 노트를 뒤적거려보면 나름 시를 좋아해서 옮겨 적어놓은 것들도 있다. 무언가 모으는 걸 좋아했고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락발라드를 좋아했고 20대에 읽었던 책을 보면 신화나 오페라에도 관심이 있었다. 특히 뮤지컬 관람을 즐겼다. 못하는 영어를 끌어안고 굿모닝팝스도 듣고 회화학원도 다녀봤다. 검색해보니 36년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굿모닝팝스가 2024년 6월부로 폐지되었다. 넘치는 미디어 정보로 아날로그가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것저것 호기심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깊게 파지는 못했다. 탐색의 시간이었으리라. 대학 졸업 후 편집디자인과 웹디자인으로 회사생활을 했었고 쉬는 동안 미술도 하고 테디베어도 만들어 보고 비즈공예도 배웠다. 비즈공예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았고 작업물이 쌓이는 것이 아까워 자판으로 팔기 시작했다. 반응은 좋았고 직접 제작한 쇼핑몰로 수공예품을 파는 것이 내 직업이 되었다. 남들 버는 만큼 벌었고 저축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결과물을 얻는다는 것은 크나큰 성취감이었다. 그리고 결혼 후 독박 육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에서 오는 기쁨으로 인해 나의 정체성과 시간들은 묻히고 잠시 정지되었다. 육아에 흠뻑 빠져서 나를 잃어버리는 중이었다. 긴 시간 동안 나는 없었다.
어떤 이가 나에게 물었다.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세요?“ 난 대답했다. 올드팝송도 좋아하고 영화음악이나 오페라도 좋아하고 락음악도 좋아해요. 다 좋다는 얘기. 그런데 실제로 그렇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이 다르니까. 특히 스트레스 받는 날은 Muse의 Drones 앨범이 노이즈캔슬링한 상태로 들으면 최고다. 지금이야 어떤 상황에 대한 내 확고한 취향이 생겨 이렇게 대답을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다음에 이어진 말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에 따라 연애 스타일이 다르더라구요.“ ’나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지?‘ 그 때가 서른 후반이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취향은 있었지만 그것들을 데이터화 하지 않아서 나조차도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인식하지 못했었고 주변에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살아온 것이다.
좋아하는 시와 노래들을 추려봤다. 시는 주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종류의 것들이었다. 노래 역시도 그랬고 주로 인생의 깊은 의미에 대해 쓴 곡들이었다. 그랬구나. 그랬다.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김현 ’다짐‘ 이수동 ’동행‘
’카르페디엠‘이란 단어가 유행하던 때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운명을 받아들였다. 『백만송이 장미』의 아름다운 가사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는 때인가 보다 했다. 실망과 버팀, 포기를 거쳐 다가온 ’무기력‘이 결코 가벼운 단어가 아님을 알았다. 그 어떤 좋은 말과 충고도 일으켜 세울 수 없음을 알았다. 의지가 없다는 말은 함부로 지껄이는 사치임을 알았다. 치열하게 내면을 성장시키는 시간을 오롯이 버티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이 비워진 상태가 되면 별것 아닌 게 됨을 알았다.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의 상태. 결코 가볍지 않는 해맑음이 지금의 나를 행복으로 채운다. 나는 보이는 것 보다 숨겨진 아름다운 것들이 좋았고 당장 벌이를 하는 것 보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 좋았다. 그래서 지금은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지 못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로 인해 일어설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나 스스로 40사춘기라 명명하는 40부터 천천히 나를 찾기 시작했다. 마음이 힘들어 자기계발과 심리 서적들을 뒤적였고 나르시스트, 심리조종자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나를 방어하는 방법을 익혀갔다. 그리고 내 인생 최고의 몰입의 시간이었던 영문학을 공부하고 책 또한 놓지 않았다. 그 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고통의 시간들은 나의 인생의 부피를 풍성하게 늘려주었다. 이제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서서히 일어설 것이다. 보란 듯이.
천천히 나이테처럼 자기의 인생의 무늬가 새겨지는 거겠지. 그 무늬는 나를 에워싸 다른 이들이 볼 때나 대화할 때 스며나오고 느껴지며 물들일 것이겠지.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자. 무늬는 무늬를 알아본다. 무늬가 없는 나무는 대화의 깊이가 다르다. 그 이유를 이 책의 아래 글귀에서 찾았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양귀자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