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면 팔자 덕, 안 돼도 팔자 탓
(1)
지독한 독감과 그보다 더 지독한 가정 보육이 끝난 날. 마침 유부녀 친구들과의 모임이 잡혔다. 열음은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훈에게 출산 선물로 받은 백까지 메고서 집을 나섰다. 오늘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 입사 동기였는데 둘은 희망퇴직을 한 후 전업주부로, 열음을 포함한 둘은 워킹맘, 또 한 명은 직업을 바꾸어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모두가 제 살기 바빠 누군가 상을 당하거나, 혹은 아이를 낳아 돌잔치라도 해야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다섯이 모두 모이는 건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날이었다.
약속 장소는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중식당이었는데 가격이 비싸긴 해도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다섯이 모두 회사에 다닐 적엔 월급날마다 여기서 술을 먹고 나이트에 가는 게 당연한 코스였지만, 지금은 술은 사치요, 나이트는 추억 속에나 존재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애를 셋이나 낳고도 또 넷째를 가진 친구 영효를 마지막으로 출석 체크는 끝났다. 넷째가 아들이라고 했던가. 유난히 큰 배를 안고 들어온 영효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예정일이 언제랬지?”
“7월 8일. 근데 넷째라 몰라. 더 빨리 나올 수도 있구.”
“몇 주야? 배가 엄청 크다. 만삭 같애.”
“29주. 배 엄청 크지? 선근증이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대. 나 서준이 서율이 서하 셋 다 배 컸잖아.”
“쟤 어릴 때부터 자궁 안 좋았잖아. 생리통도 심하고 생리도 엄청 길게 하고. 영효 결혼하기 전에 애 잘 안 생길 수도 있다고 시험관을 하니 마니 하더니 우리 중에 애 젤 많이 낳았잖어.”
지원의 말에 아줌마들은 한바탕 깔깔깔 웃었다. 아차. 현지 생각을 못 했다. 열음은 괜히 옆에 있는 현지의 눈치를 봤다. 현지는 시험관을 11차까지 하고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최근 입양을 고려하고 있었다. 양가에서 절로, 교회로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고, 불공과 헌금으로 모자라 ‘이름을 수정으로 바꿔야 수정이 잘된다’는 말 같지도 않은 도사님의 말에 개명까지 했지만 끝내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시험관 포기를 선언한 뒤 입양을 알아보고 있다며 씩씩하게 소식을 전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당연히 이런 대화가 편하지는 않을 터였다. 화제 전환을 뭐로 해야 하나, 열음이 골똘히 고민하던 그때 경아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던져왔다.
“야, 너네 저기 제창동에 새로 생긴 점집 가봤어? 작년에 신 받았다는데 신빨이 장난 아니래. 앉은자리서 술술술술 꿴다는데 나 한번 가볼까 봐.”
점집으로 화제 전환이 되나 싶었지만, 자식 자랑과 진로 고민으로 이어진 대화는 자리를 파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는 단톡방에 그 신빨이 ‘죽인다는’ 도사의 번호가 올라오며 끝이 났다. 긴 인사가 끝난 후에 차에 올라타려던 열음은, 차가 들썩거리도록 울고 있는 현지를 보고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2)
“자, 마셔. 숨 좀 크게 들이마시고. 이제 좀 괜찮아?”
“그냥.... 좀. 서운해서.”
“왜, 아까 자꾸 자식 자랑들 해서?”
“아니, 그 단톡방... 나 빼고 따로 만든 방이지?”
헉. 열음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경아가 번호 공유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톡방에 그 번호가 없는 거야. 너네는 다 저장했다 그러고. 그러고 보니까 나만 애가 없잖아. 나 때문에 불편해서 너희끼리 방을 만들었겠구나, 그럴 수도 있지.. 싶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 그게 그렇게 서운한 거 있지. 나 좀 이상하지?”
“....”
현지는 미안하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열음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괜찮냐고 묻는 것조차 미안해서 열음은 가만히 현지의 말을 듣기만 했다. 열음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열음은 줄줄이 사탕처럼 아이를 낳는 영효 연락은 받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 자격지심이 자신을 더 옭아맬 거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3년을 고생하고 나서야 지온을 품에 안았는데, 열음은 그때야 비로소 자격지심이 떨쳐지는 기분이었다. 그 고통의 시간을 제일 잘 아는 게 나면서, 왜 이렇게 세심하지 못했을까. 열음은 제 뺨이라도 내려치고 싶었다.
“근데 말야. 그 점집, 나도 한번 가볼까?”
결국, 현지도 제창동 점집 번호를 받았다. 현지는 본인은 정말 괜찮으니 친구들에겐 아무 말 말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차에 올라탔다.
며칠 뒤. 열음은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영효의 전화를 받았다. 제창동 점집을 예약하려는데 같이 좀 가 달라는 내용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그러마고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영효에게 전화가 왔다. 그 유명하다는 점집이 웬일로 오늘 시간이 되니 오라고 했다는 거였다. 열음이 영효를 데리러 가려했지만, 야근까지 하고 온 너에게 운전을 시킬 수 없다며 한사코 영효가 운전하고 나섰다. 영효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배를 하고서 꼭 저를 닮은 분홍색 경차를 끌고 나타났다.
조수석에 타서 본 영효는 지난주보다 훨씬 부어있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샌들이 안 신어지더라며, 어쩔 수 없이 크록스를 신고 나왔다는 영효의 발이 어쩐지 퉁퉁 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넷째라 그런가, 하는 말에 열음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동자신을 모신다는 그 점집은 입구부터 시뻘겋고 번쩍번쩍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신발을 벗고 대기실 같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안쪽 방에서 눈이 팅팅 부은 여자 둘이 나왔다. 아마도 도사에게 나쁜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안쪽을 곁눈질하던 열음에게 제자라는 사람이 와 둘이 함께 들어가겠냐고 물었다. 영효가 점은 같이 보는 게 아니라며, 먼저 들어가라고 열음을 떠밀었다.
그런데 열음이 앉자마자 도사가 불호령을 쳤다.
“언니야 니는 왜 아빠 밥을 안 주는데!!!”
(3)
벙찐 열음이 눈만 끔벅대며 도사를 쳐다보자, 도사는 혼자 염불을 외듯 중얼대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가 배고프다고 자꾸 얘기를 한다. 꿈에 안 찾아왔드나? 배가 고파 죽겠단다. 아무도 밥을 안 차려줘서 배가 고파가 우에 올라가도 못하고 떠돌고 있다 안 하나. 언니 네가 차리주야되겠다.”
도사의 말을 요약하면,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은 열음의 아버지가 제대로 된 젯밥도 못 얻어먹어서 구천을 떠돌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아이도 늦게 생긴 것이고 일이 안 풀리는 것이라 했다. 천도재를 지내줘야 할 것 같다며, 그래야 남편도 대기업에 들어가고 열음도 오래 일할 수 있고 지온도 건강하다고 했다.
열음의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도박에 의존하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 당장 저 많은 빚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가 더 걱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천도재? 그것도 마음이 나야지 하는 거지. 순 엉터리구먼. 열음은 도사에 대한 신뢰가 0으로 떨어졌다.
도사는 아버지 이야기에 이어 독실한 크리스천에 술, 담배라고는 입에도 안 대는 시아버지를 두고 술, 담배 때문에 일찍 가시겠다는 둥, 수줍음이 많아서 나서서 노래하는 것도 싫어하는 지온을 두고 연예인이 되겠다는 둥, 엉뚱한 소리만 해댔다. 그 바람에 열음은 영양가 있는 답은 받아내지도 못하고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5만 원도 아까운 점사였다. 영효에게 눈짓으로 별로라는 사인을 보낸 후 소파에 앉은 열음은, 저도 모르게 설핏 잠이 들었다. 그런데 10분쯤 지났을까. 방에서 큰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 화가 잔뜩 난 영효가 표 나게 쿵쾅대며 방을 나왔다. 열음은 정신없이 가방을 챙겨 영효를 따라나섰다.
점집을 나서자마자 영효가 뱉은 말은 황당했다.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해서 아이가 총 넷인데 애들이 어떻게 크겠느냐, 첫째는 축구를 하고 싶어 한다. 축구에 소질이 좀 있겠냐는 질문에, 도사가 “너한테는 애가 셋밖에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영효는 도사가 뭔가 착각을 했나 싶어 지금 키우는 아이가 셋이며 이 아이까지 넷이라고 다시 설명했지만, 도사는 끝까지 “너에게는 애가 셋밖에 없다”며 우겨댔다고 했다. 결국 영효는 궁금했던 축구 얘기는 듣지도 못하고 도사와 말다툼을 하고 나왔다.
영효는 열음을 집 앞에 내려주는 그 순간까지 도사 욕을 했다. 열음도 그래 미친놈이 분명하다고. 어떻게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느냐며 같이 욕을 해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영효의 넷째가 태어나버렸다. 이제 갓 30주, 1kg를 겨우 넘긴 아기가.
(4)
첫째는 41주, 둘째, 셋째는 40주를 꽉 채우고서 낳은 영효였다. 그날 밤, 잠에 들려다 문득 아이가 너무 오래 놀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해 병원에 갔고, 말도 안 되게 치솟은 혈압 때문에 그대로 대학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치가 너무 좋지 않아 곧바로 아이를 꺼내야 했다는 이야기를, 영효 남편이 대신 전해주었다. 영효는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아 중환자실에 있었다.
“애가.. 애가 너무 작아요.. 너무 작아요... 어떻게 그렇게 작은 애가...”
키도 크고 덩치가 좋아서 영효가 종종 ‘허우대만 멀쩡한 놈’이라고 부르는 영효 남편이 울었다. 열음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전화를 끊고 자려고 누웠지만,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임산부가 무슨 점집이냐고 뜯어말릴걸. 최소한 운전이라도 내가 할걸. 아니다, 역시 거기엔 가지 말았어야 해. 열음은 괜한 소리를 듣고 오는 바람에 아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어 무서웠다. 함부로 이 이야기를 입 밖에 냈다간 점괘가 사실이 될 것만 같아, 열음은 입을 더욱더 꾹 닫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영효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 없이 조리원은 죽어도 못 가겠기에 집으로 왔다는 영효의 이야기에, 열음은 영효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 들고 영효의 집을 찾았다.
“나 벌 받는 건 아니겠지? 나, 우리 애기 생겼을 때.. 생긴 거 알고서.. 이거 어떻게 키우나, 얘는 또 어떻게 키우나, 기쁜 게 아니라 덜컥 겁이 나더라고. 나 별로 안 기뻤어 열음아. 그저 감사합니다 했어야 했는데. 내가 기쁘질 않았어, 열음아.. 그래서 벌 받나 봐.. 근데 왜 그 벌을 내 새끼가 받니..”
영효가 꺽꺽대며 울기 시작했다. 열음은 괜찮냐고 두어 번 묻다가, 급기야는 같이 울어버리고 말았다. 1kg을 갓 넘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각종 수액을 달고 검사를 치르느라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었고, 갑자기 쇼크가 와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영효는 그 도사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거기 가서 부적이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다가, 아니라고. 거길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히 점 보러 갔다가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다 자기 탓이라며 울었다. 둘이 부둥켜안고 눈물 콧물을 다 짜내던 그때,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그리고는 열음에게 양해를 구한 뒤, 훌러덩 옷을 열어젖힌 영효가 유축기를 가슴에 끼웠다. 힘없이 푸슝, 푸슝, 소리를 내며 젖을 짜던 유축기에서 별안간 핑크색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유축을 너무 자주 해서 유두가 찢어진 모양이었다. 열음이 연고를 갖다 주자, 영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연고를 바르고 다시 다른 쪽 유축을 시작했다. 열음은 자꾸만 눈물이 나서 영효를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효 집을 나설 때, 열음은 힘내란 말 대신 “너 먼저 챙겨. 그리고 네 잘못 아니야.”라는 말을 해주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말이었다.
(5)
영효의 출산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은 단톡방에 점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나둘 전하기 시작했다. 지원은 자식 복이 대단하다는 말에 꽤 만족한 듯 했고, 경아는 사업하는 남편에게 여자가 생길 거라는 말에 남편의 뒷조사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점집을 다녀온 현지는 열음에게만 연락해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나, 그 도사가 그러는데 곧 애기 생긴대. 심지어 둘이나 낳는다는 거야.”
어릴 땐 자식들의 미래나 집안의 대소사를 점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철철이 제사며 차례를 열심히 지내는 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진노했다는 조상의 장난질에 자손들이 망하거나 다치거나 죽었다. 나중에는 열음의 아버지가 화투를 못 놓는 것조차 그가 나약한 게 아니라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심심해서 장난을 치는 거라고 했다. 뿐인가. 어린 열음에게는 ‘딸로 태어나서 조진 팔자’라며 아들로 태어났다면 집안을 일으켰을 거라는 소리가 따라다녔다. 열음은 자신의 선택도 아닌데 아들이 아니라 딸로 태어난 것에 대해 늘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깟 사주팔자가 뭐라고. 진절머리가 났다.
그런데, 그 진절머리 나는 것이 현지에게는 희망이 될 수도 있겠구나. 영효의 점괘는 틀리기를 빌어야 하고, 현지의 점괘는 맞기를 빌어야 하고. 이런 건 누구한테 빌어야 들어주시나. 열음은 그저 생각날 때마다 하늘에 있는 어떤 존재에게 영효와 아이의 안녕과 현지의 임신을 빌었다.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갔다. 그 도사는 엉터리인 게 분명했다. 용하다는 소문은 반짝 빛을 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었다. 그사이 지원은 왕따 사건에 휘말린 아이 때문에 학교에 불려 다니며 ‘자식 복’을 운운한 도사를 저주하고 있었고, 경아는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며 휴대폰을 조사하다 부부싸움만 크게 하고 말았다.
영효의 아이는 두어 번의 고비를 더 맞이했다. 하지만 출산예정일에 가까워지자 빠른 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했고, 건강하게 영효의 품으로 돌아왔다. 임신 사실을 알릴 땐 ‘넷째는 돌 반지도 안 해줄 거야’라던 영효였지만, 영효는 나중에 아주 화려한 돌잔치를 열었고 그곳에서 그간 해온 마음고생을 털어놓으며 펑펑 울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아이가 돌잡이로 명주실을 잡았을 때, 열음은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영효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혈압은 그전부터 높았는데 임신 중독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 그거 그냥 tv나 이런 데서 나오는 거지. 심지어 병원에서도 좀 높네요, 하고 말더라구. 아무 생각이 없었어.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임신중독이 서서히 진행 중이었던 것 같아. 몸도 많이 붓고. 그런데 그날은 그 도사 말이 진짜 기분이 나쁘고 너무 불길한 거야. 그래서 거기 찾아간 것 자체를 후회했거든? 근데 요즘은 그 사람이 내 은인인가 싶다?”
“뭔 소리야?”
“그날 그 말을 들어서 더 예민해져 있었거든. 평소 같으면 태동 없어도 그냥 자나보다 했을 수도 있어. 애 셋 보면서 임신까지 했는데 내가 막 예민할 수가 없지. 웬만한 건 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데. 근데 그날은 느낌이 이상한 거야, 싸하더라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병원 가고... 수술하고, 애도 살린 거 같애.”
영효 넷째의 돌잔치가 끝나고 얼마 뒤, 현지도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아이가 반드시 생길 거라는 말에 현지는 열심히 몸을 만들어 한 번 더 시험관에 도전한 모양이었다.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이야기에 친구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사주팔자가 정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안 좋은 사주를 가지고 한계를 설정하는 것도, 또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좋은 사주를 가지고 그것만 믿는 것도, 또 희망을 품고 노력하는 것도 다 개개인의 몫 아닐까. 열음도 용기를 내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기로 다짐했다. 나의 시작을 미워하는 것이 내 삶의 전반에 걸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도재는 절대로 지내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