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야

진짜 그랬다면 누가 원인제공을 했겠지

by 김금봉

(1)

야간 근무 후 쓰러지듯 잠이 든 열음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훈이려나. 오늘도 회식한다는 연락일까. 아니면 한 달 넘게 냉전 중인 친정엄마의 전화일까. 열음은 눈을 떠서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짜증이 날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잠시 끊겼던 벨소리는 이내 요란하게 울려댔고, 결국 열음은 눈을 떠서 발신자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었다. 차라리 남편이나 친정엄마가 나을 뻔했네. 흠흠, 열음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지온이가 오늘 친구들이랑 놀다가.. 좀 다쳤어요."


친구가 집에서 가져온 장난감을 보고 자기도 같이 놀고 싶었던 지온이 장난감을 달라고 했다가 싸움이 난 모양이었다. 투닥거리는 싸움 끝에 친구가 지온을 물었고, 제법 빨갛게 잇자국이 남았다고 했다. 원장 선생님은 연신 죄송하다면서도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자신과 담임이 자리를 비웠지만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점이라는 것도. 살짝 빨갛게 부어오른 정도지만 연고를 며칠 바르면 가라앉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어쩐지 열음에겐 자기들 책임은 없고 애들끼리 일이니 알고만 있으라고, 나서지는 말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열음이 조심스레 누가 그런 거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혹시 상대 아이 부모의 사과를 받고 싶으시냐"였다. 사과를 받고 싶냐는 질문은 열음을 주저하게 했다. 사과를 요구할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 입장을 바꾼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면 당연히 한다고 할 텐데? 누군지 말 못 할 이유가 대체 뭐람. 열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버버 하다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내일은 오전 출근이긴 하지만, 잠을 보충해야 하는데. 열음은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아니 그런데 원래 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규칙이 있으면 그걸 지켜야지, 왜 자꾸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거지. 이걸 문제 삼으면 내가 너무 쪼잔해 보이나? 많이 울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데리고 올까? 그럼 내가 너무 유별나 보이나?



(2)

오늘은 30분 빨리 집을 나섰다. 아까 할까 말까 했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드릴 말씀이 있다는 이야기에, 원장 선생님은 허리 뒤로 현관문을 조용히 닫았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우선 집에서 개인 장난감 가져오는 거, 안된다고 처음에 공지하셨던 거 같은데 그걸 쭉 지켜주셨으면 하고요. 가지고 온 아이가 있으면 하원할 때 돌려주시던지, 아니면 애초에 받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는 지온이한테 친구 물건 뺏으면 안 된다고 반복해서 가르칠게요. 그리고 그 상황을 직접 본 어른이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물론 24시간 붙어있을 순 없으시겠지만.. 아이들끼리 다투는 상황이었다면 자리를 비우면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 저 어머님 그거는요."

"그리고.. 제가 사과를 받고 싶어서 누가 물었냐고 물어본 게 아니에요. 사과는 요구해서 받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사과가 아니죠. 다만, 문 아이 엄마나 아빠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건 아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씀은 전달해 주세요. 사과할지 말지는 그분이 정하시겠죠."

".. 네, 알겠습니다. 우리 지온이 데리고 나올게요."


집에 돌아와 아이를 씻기며 상처를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더욱 좋지 않았다. 개도 아니고, 차라리 밀치거나 때리는 게 나을 텐데. 누군지 몰라도 고놈 자식 아주 이빨 자국도 선명하게 물어놨네. 열음은 성질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지온아, 이거 정말 아프겠다. 오늘 장난감 때문에 싸웠다며."

"응. 지온이가 루피 좋아해서 루피 갖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찌운이가 이렇게 지온이 콱 물었어."

"찌운이? 지윤이? 지윤이가 그랬어?"

"아니. 몰라."


열음은 곤히 잠든 지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누가 물었지? 지윤이? 지훈이? 아, 애들 이름은 왜 이렇게 비슷한 거야. 누군지는 몰라도 그 엄마한테 정말 전달은 했을까? 전달했다면, 연락이 왔어야 맞지 않나? 그래도 자기 자식이 친구를 물었다는데.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사과하는 게 맞지. 왜 연락 한 통이 없어? 열음은 분노는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그러던 중, 도어록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훈이었다. 열음은 거실로 나와 훈을 맞이했다.


"자기야, 오늘 지온이 친구한테 물려왔다?"

"물렸다고?"

"응. 팔이 물려가지구 새빨개. 잇자국 남았어."

"어쩌다가 그랬대?"

"친구 장난감을 뺏었는데.."

"맞을 만했네."



(3)

열음은 어떻게 아이 아빠란 사람이 아이가 맞아서 왔다는데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냐며 분노했지만, 훈은 우리 아이가 당하고 온 건 결과일 뿐 과정을 봐야 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진정하라며, 열음이 지나치게 감정적인 거라고 했다.

말을 마친 훈은 욕실로 향했고, 소파에 늘어진 열음은 훈의 말대로 진정하려 애를 써보았다. 내가 과한 건가? 화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하아. 모르겠다. 남자들은 제 배 아파 안 낳아서 그런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여자보다 없어도 너무 없어. 내 자식 일에 그렇게 대단히 객관적이고 대단히 공명정대할 수가 있나? 그럴 거면 법대 가서 판사를 하지 왜 저러고 있담. 씩씩거리며 맥 주 한 캔을 단숨에 비운 열음은 그대로 뻗어서 잠들었다.



다음날, 웬일로 지온의 등원을 도와주겠다는 훈 덕분에, 열음은 편안하게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훈에게서 지온의 사진이 왔다. 과자가 먹고 싶대서 친구들하고 다 같이 먹으라고 많이 사서 들려 보냈다는 메시지와 함께. 어젯밤엔 죽이고 싶게 밉더니, 오늘 아침엔 또 예뻐 보이는 아이러니.


훈은 오늘 월급날인데 소고기나 뜯어보자며 외식을 제안했고, 열음은 저녁밥으로부터 해방됐다는 사실에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퇴근길에 지온을 하원시켜서 집에 돌아왔는데...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지온 엄마, 혹시 어린이집에 초콜릿 과자 보내셨어요?]



(4)

열음은 문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초코? 웬 초코? 아! 이런. 그런데 시아한테 알레르기가 있었나? 아니,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지, 초코 보낸 거 자체가 문젠가? 이제 네 살이니까 괜찮지 않나? 아, 뭐라고 하지. 일단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열음이 손톱을 뜯으며 안절부절못하던 그때, 훈이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집에 있었네? 나가자."

"아, 왜 초콜릿 과자를 사들고 갔어. 시아 엄마한테 톡 왔잖아, 초콜릿 과자 보냈냐고."

"왜? 보내면 안 돼? 담임쌤 엄청 좋아하셨는데?"

"몰라. 애가 알레르기가 있나..? 아 뭐라고 하지?"

"그걸 왜 고민하고 있어. 알레르기가 있었으면 선생님이 알고 계셨겠지."


훈이 지온을 챙겨 먼저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섰다. 어서 오라는 훈과 지온의 성화에 열음도 신발을 구겨 신고 울상을 한 채 엘리베이터에 탔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답장을 하자.


[안녕하세요~ 네! 오늘 아침에 지온 아빠가 보냈나 봐요. 무슨 일 있으실까요?]

[시아는 초콜릿 알레르기가 있어요]


곧바로 온 답장은, 열음을 더 당황하게 했다. 알레르기가 있다. 음. 그런데 먹은 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괜찮나요? 아, 내가 알레르기 있는 줄 알았냐고요.

[애기 아빠가 별생각 없이 보낸 모양인데 죄송해요.. 시아는 괜찮나요?]


시아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답장을 보내왔다. 아이가 밤새 몸을 긁고 있다, 너무 속상하다, 저녁밥도 안 먹고 울다가 잤다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아니었다, 좀 더 큰 민간 어린이집에 보낼 걸 그랬다고까지 이어졌다. 열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속 죄송하다고만 했다. 결국 그 대화는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 너무 속상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는 시아 엄마의 사과와 함께 끝이 났다. 문제는, 그 대화가 끝난 후에도 열음은 마음이 답답해 잠을 한숨도 못 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지온이 친구를 물었다는 전화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시아를.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 애가 그럴 애가 아닌데. 시아가 먼저 때렸나?!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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