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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 Apr 19. 2022

굳이 스리랑카로 돌아가야 할 이유!

2022년 9월, 나는 스리랑카로 돌아가려 한다!

한국을 떠나는 게 아니라 스리랑카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더 좋다. 사람들은 굳이 스리랑카로 돌아가야 하냐며 나의 결정에 놀라워하거나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지만 나는 진짜 괜찮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22년 2월의 어느 날,

회사 대표님과 점심식사를 하는 중에 문득 스리랑카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흔히 디지털노마드를 꿈꾸며 한적한 바닷가 앞에서 노트북 하나 켜놓고 일하는 상상을 하는데 내게는 언제든지 돌아갈 그런 풍경의 집이 있다. 바로 스리랑카다.

인도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실론티로 유명하지만 '인도양의 보석'이라는 수식어답게 자연이 아름답고, 광물이 많이 나는 보물섬이기도 하다. 한국에 수입되어온 홍차의 대부분이 스리랑카산인만큼 실론티의 품질 또한 우수하다. 그러나 2019년 부활절 테러와 연이은 코로나19는 2022년 현재, 대통령 탄핵과 국가부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종이를 수입하지 못해 학생들이 진급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필수 의약품이 떨어져 치료가 어려울만큼 국가는 어렵다. 치솟는 유류비와 생필품 부족, 하루 13시간 이상의 단전으로 자영업자의 생계 또한 위협을 받고 있다.

스리랑카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나라가 위기에 빠지니 사람들의 걱정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가야 한다. 그곳이 나의 집이고, 나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외국이라고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에 가본 게 전부인 영어도 못하는데 싱할라어는 더더욱 못하는 한국어만 유창한 나는 토종한국인이다. 이런 내가 2010년, 스리랑카인인 남편을 만났다. 연애할 당시만 해도 서툰 한국어로 사랑 표현만 해대는 남편 하나 믿고, 2011년 10월 결혼했다. 그리고 주말부부라는 말이 무색하게 슬하에 3명의 아이를 두게 되었다.


2016년, 스리랑카에서 (시어머니와 엘리사, 조수아, 에스더)

2015년, 셋째가 100일 정도 되었을 때 스리랑카로 첫 이민을 떠났다. 아메리카 드림처럼 스리랑카 드림을 꿈꾸며 호기롭게 미용실과 잡화점을 시작했지만 수입보다는 손해가 나는 장사가 되었다. 6개월만에 한국행을 선택한 남편은 우리를 시댁에 둔 채, 홀로 한국으로 떠났다.

2017년 6월, 한 달의 휴가를 받아 되돌아온 남편이 잘 쉬다가 떠났고, 7월. 넷째의 임신을 알게 되었다. 주말부부가 무색했던 우리가 기러기부부의 기적을 해낸 것이다. 3일을 고민하다 가방 하나, 유모차 한 대 끌고 아이 셋의 손을 잡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2022년. 순식간에 지난 5년을 되돌아보니 시어머니는 나이 드셨고, 아이들은 자랐다. 재롱둥이였던 셋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점처럼 작았던 세포(?)는 건강하고 활기차고 야성적인 남자아이로 자라났다. 친정과 가까이 살며 딸로서의 호의호식은 맘껏 누렸지만 며느리로서는 효도조차 하지 못한 지난 세월이 생각났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노인이 된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문득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떠오르는 스리랑카에서의 행복한 추억들. 자유로운 사남매가 더 크기 전에 좀 더 스리랑카를 느끼고 맛보게 해주고 싶어졌다.


2016년, 스리랑카(뒷집에 사는 쌍커 오빠와 즈겁게 노는 아이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사보다 이민이 낫겠다 싶었다. 보증금 200만원 월세 36만원의 꿀같은 집에 살지만 집주인 또한 고령이신지라 언제 이사가야 할지 모른다. 집은 낡았다. 스리랑카에서 돌아와 급히 구한 집에서 5년을 살았고, 이사를 가려니 보증금 1000만원도 없는 현실에 막막하기도 했다. 빚을 내어 보증금을 구한다해도 2년마다 이사 다닐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그럴 바에는 마음도 편하고, 삶도 자유로운 스리랑카로 이민가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대도 마음의 만족감, 풍요로움은 한국보다 스리랑카다. 그러니 돌아가야겠다. 한국에서 40년 살았으면 되었다. 인생 80이라고 했을 때, 충분한 시간이었다.


스리랑카 경제위기, 정치위기인데 괜찮겠냐고 묻겠지만 원래 없이 살았고, 인생은 언제나 굴곡의 연속이다. 엄마의 욕심에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부담이긴 하다. 그래서 일단 가보고, 아이들에게 선택을 맡기려 한다. 첫째와 둘째는 한국으로 유학와도 괜찮다는 생각도 한다. 한국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다. 나보다 더 살뜰하게 아이들을 챙겨줄 배경이 있기에 걱정없이 한국 유학도 가능하다 생각한다. 그러니 일단 돌아간다.


나를 오랫동안 봐왔던 지인은 이번만큼은 내 결정에 반대 의견을 내긴 했었다. 뭐든 성급하게 결정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내 성격이 이제는 진짜 이해 안 된다는 듯 얘기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나를 대신해 내 인생을 살아주지는 않으니까. 그러니까 일단 돌아간다. Go! 기다려라. 나의 고향, 스리랑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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