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위 조롱이 성취된 역설
예수가 살아있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철권통치 아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가 골고다(갈보리) 언덕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모욕적이고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갖게 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아(크리스트)로 오신 예수는 왜 그토록 참혹한 십자가형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사실 당시 로마제국은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중대한 반역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십자가형으로 처형하였습니다. 이러한 십자가형은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대중 앞에서 겪어야 하는 가장 잔인하고 모욕적인 처형방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것은 곧 예수의 죄에 대한 양형을 결정하는 재판에서, 로마제국에 대한 실질적인 반역죄로 판결이 났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요한복음 10:36, 마태복음 16:16)”이요, “메시아(크리스트/그리스도/기독: 마가복음 14:61-62, 누가복음 4:21)”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또한 예수가 종려주일(부활절 1주일 전)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그를 따르는 큰 무리는 예수에게 “이스라엘의 왕(요한복음 12:13)”이라며, 호산나(구원하소서의 뜻을 지닌 찬양)를 큰 소리로 외치며 환호하였습니다. 실로 우리는 이러한 기록들을 성경의 여러 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예수의 말은 유대교의 율법에 반하는 “신성모독죄”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교지도자들은 그들의 기득권에 위협을 느껴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예수를 반역죄로 몰아서 로마당국에 고발하였습니다. 이에 로마의 유대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반역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지도자들의 강한 요구와 폭동을 우려해 결국 반역죄를 선고하게 되었습니다.
부연하면, 예수에게 적용된 반역죄의 근거는 예수가 재판과정에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을 하였는데, 이것을 빌미로 삼아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예수가 재판 중에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요한복음 18:36)"라고 직접 밝힌 바와 같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세속적 의미의 왕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는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죄로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매달린 그 십자가에는 예수의 죄명을 쓴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INRI”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이 말은 라틴어(고대 로마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이니셜로서, 이를 번역하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서, “INRI”라는 죄명을 써서 붙였는데, 역설적으로 예수의 사후에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실제로 “유대인의 왕”이자, 더 나아가 “만왕의 왕”으로서 추앙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이것은 죄명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환언하면, “INRI”라는 팻말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로마인들이 예수를 조롱을 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실제로 예수는 다윗왕의 후손으로서 “유대인의 왕”을 성취한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 위의 “INRI”라는 팻말은 예수를 조롱하려는 의도였으나, 역설적으로 예수는 진정으로 온 인류의 “만왕의 왕”임을 증명하는 성취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묘하고 심오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예슈아(ישוע)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구원”의 의미가 십자가 위의 조롱 섞인 “INRI”라는 팻말을 통해서, 마침내 메시아의 사역이 성취된 것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