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늪에서 희망의 빛으로
성경에는 세속적 식견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경이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가 행한 이적 중 가장 고결한 희망을 보여주는 성경의 기록입니다. 회당장인 야이로는 죽음의 문턱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며,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마가복음 5:23)”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러한 야이로의 처절한 절규를 듣고, 예수는 이를 긍휼히 여겨 그의 집으로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야이로의 집으로 가던 도중에 야이로의 하인들이 앞길을 막아서며,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예수)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마가복음 5:35)”라며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즉, 이 말은 야이로의 어린 딸이 이미 죽었으니 이제는 부질없는 희망을 접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절망적인 비보를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는 절망에 빠진 야이로를 향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마가복음 5:36)”라는 단호한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가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온 집안은 통곡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는 통곡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느니라(마가복음 5:39)”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에게 냉소를 보냈지만, 예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야이로의 딸의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야이로의 어린 딸의 차가운 손을 잡고 아람어로 “탈리타 쿰(Talitha Koum)”이라는 준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를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마가복음 5:41)”라는 뜻입니다. 예수의 이러한 권능의 말씀은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절망의 방 안에서 발현되었으며, 이는 죽음의 권세를 단숨에 파괴하는 신적 주권을 현시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즉, 이제 숨이 멎어 몸이 차갑게 식어가던 야이로의 어린 딸은 마치 갓 잠에서 깬 듯 벌떡 일어나 곧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마가복음 5:42)**. 성경에 기록된 이 놀라운 예수의 이적은 깊은 절망의 심연에서도 삶의 희망을 주는 위대한 선포입니다. 즉, 예수가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마저 무너뜨린 이 이적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현실의 절망 역시 결코 우리 생의 마침표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 증거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탈리타 쿰은 우리에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새롭게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날 풍요 속의 빈곤과 극심한 소외로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컨대,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예수께서 이들에게 권능에 권능을 더하사, 이들이 깊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 희망의 빛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탈리타 쿰(Talitha Ko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