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빛을 밝혀라

소설 + 창작과정

"파이어 볼!"


종이 뭉치가 무빈의 뒤통수를 때렸다. 킥킥대는 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 새끼야, 불도 없이 무슨 파이어볼이야. 라이터 내놔봐."

"와, 역시 종후 상남자네! 좀 있으면 종 칠 텐데?"

"괜찮아, 어차피 다음 시간 국어야."

"ㅋㅋ노빠꾸 인정"


칙-칙-


무빈의 등 뒤에서 부싯돌을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무빈은 뒤를 돌아볼 권리가 없는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뭔가에 골몰한 듯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종이 타는 냄새가 교실 뒤편을 중심으로 퍼져 나왔다.

교실에서 보기 힘든 파격적인 해프닝에 대한 기대감과, 자기가 직접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안도감에 신난 학생들이 축제처럼 악을 썼다.


"ㅋㅋ야 창문 열어! 냄새 오진다!"

"아~ 종후 법사님 파이어볼 시전하나요?"

"무빈이 등심 일 인분 미디움 레어요~!"


종후는 불이 붙기 시작한 종이 뭉치를 손가락 끝으로 잡았다. 그리고 손이 뜨거워지기 전에 무빈의 등어리를 향해 얼른 집어던졌다.


"파이어- 볼!"

"와 미친! 진짜 했어 ㅋㅋㅋ"


종후의 장난은 명백히 선을 넘고 있었다.

사실 종후 본인조차 이래도 되는지를 확신하기 어려웠다. 주변에서 추켜주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사람한테 진짜 불을 던지지는 않았으리라.


후르륵-


종이의 불은 다행스럽게도 무빈의 등에 닿기 직전에 꺼지고 말았다.

불이 꺼진 채 바닥에 떨어진 종이에서는 새까만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야, 밟아 밟아 ㅋㅋㅋ"


종후를 비롯한 몇 명이 우르르 달려와서 종이를 밟아댔으나, 이미 교실에는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탄 냄새도 숨길 수 없이 가득했다.


이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드르륵-


종이 쳤지만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교실의 앞문을 열고, 국어 교사가 들어왔다.

교사는 삼심 대 초반의 젊은이였으나, 쳐진 어깨와 심한 거북목 탓에 사십 대처럼 보였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퇴근길 지하철마냥 어수선한 학생들의 틈바구니를 겨우 뚫고 교탁에 섰다.


"ㅋㅋㅋ 야 아직 탄내 개쩌는데?"

"쌤, 이 새끼가 방구 뀌었는데 탄내 나요!"

"아 뭐래, 병신이 ㅋㅋ"


학생들은 아직도 부산스레 교실을 뛰어다니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교사는 가느다란 검지 손가락으로 간신히 안경테를 어 올리며 말했다.


"얘들아, 이제 수업 시작하자."


그러나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것은 수업 시간이 10분도 넘게 지나서였다.

교사는 비로소 칠판을 향해 돌아섰다. 더듬더듬 학습목표를 판서하고 있을 때였다.


"아~ 교실에서 탄내 존나 많이 나네~!"


종후가 고함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크게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교실의 분위기는 조금도 싸늘해지지 않았다.

종후와 교사 간의 격돌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은, 수업을 들을 때보다 빛났다. 흥미진진한 마음을 감출 생각도 없다는 듯이 옆에 앉은 녀석이 거들었다.


"미친 ㅋㅋ 니가 했잖아 병신아"

"어? 고자질? 이 새끼 선 넘네 ㅋㅋ"


하지만 잠깐 멈칫했던 교사는, 더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기로 각오했다는 듯이 대꾸하지 않고 판서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지금 교실에서 판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교사뿐이었다. 학생들의 눈에 교사의 판서는, 개전開戰을 피하려는 도피 행위로 해석되었다.

도피하는 자를 쫓을 땐 누구나 강해진다. 강한 자는 더 잔인해진다.


종후는 과감하게 교사를 호명했다.


"선생님!"

"응?"


마지못해 판서를 멈추고 뒤를 돌아본 교사의 눈길은 종후가 아니라 근처의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의 시선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종후는 아랑곳 않고 질문했다.


"교실에서 탄내가 나는데, 우리 안전에 신경 안 쓰이세요?"

"와 미친놈. 지가 해놓고 ㅋㅋㅋ"


종후의 무례한 공격만큼이나, 옆에서 키득거리는 학생들의 조력도 치명적이다.

교사의 얼굴은 속수무책으로 붉어졌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학생이 파놓은 함정을 향해 스스로 발을 내디뎠다.


"... 누가 그랬어? 불태운 거 누구니?"

"무빈이요! 저 새끼가 종이에 불 질렀어요. 아까 들어올 때 제가 불 끄고 있는 거 보셨죠?"


상황을 대강 짐작한 교사는 이를 악물었다.

바닥으로 처박히려는 고개에 간신히 힘을 주며 무빈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종후가 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대사를 내뱉었다.


"무빈아, 니가 불 붙였어?"


이제까지의 소란에도 무빈은 통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앉아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중얼대고 있을 뿐이었다.

종후는 교사의 허락도 없이 일어나 무빈에게 다가가서는 뒤통수를 탁탁 쳤다.


"야, 니가 한 거 맞지?"


뒤통수를 맞을 때마다 무빈의 고개는 오뚝이처럼 흔들렸다. 교실 안의 모두는 이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그때, 무빈이 의자를 자르르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의외의 상황에 한 발짝 물러나는 종후의 눈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뇌까렸다.


"이제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는 혼혈이었다.

피는 그가 직접 섞은 게 아니다. 그러나 피 섞임의 결과는 그가 오롯이 감당해야만 했다.


그는 같은 말을 9000여 번이나 외치느라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한번 더 말했다.


"빛이 있으라"


열다섯 번째의 생일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능이었다.

빛을 선언하는 것은, 우주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향해 자신의 생명을 모두 쏟아내는 일이다.

그러면 입 밖으로 날아간 언어가 광막한 어둠의 껍질을 찢고 붉은 속살을 끄집어내듯, 항성恒星이 태어났다.


새삼 신기할 것도 없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과정이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권능이다.

순혈에게는 그랬다.


그의 선언도 마찬가지로 어둠을 거칠게 찢어내었다.

하지만 혼혈의 권능은 반쪽짜리였다. 그의 언어는 온도가 낮았다. 36.5도 내외의 미지근한 온도였다.


미지근한 빛으로는 항성을 만들 수 없다.

의 선언은 그저, 먼 우주의 어둠으로 힘없이 스며들 뿐이었다.


정확히 10000번째의 선언으로도 항성이 태어나지 않음을 확인한 직후, 그는 온 힘을 다해 시공간의 틈을 열어젖히고 냅다 투신했다.

시공간을 드나드는 것은 아버지께서 엄격히 금지한 규율.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규율을 위반했다.


아무도 방향을 특정할 수 없는 시공간의 뒤편으로 막연히 빨려 들면서, 그는 존재의 소멸마저 각오했다. 항성을 만들지 못하는 빛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문득 어딘가에 닿았다.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무빈의 몸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정신이 들자마자 아버지께 기도했다. 규율 위반에 대해 엎드려 속죄하고, 나아갈 길을 구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응답은 늘 그렇듯 간결했다.


[빛을 밝혀라]


얼른 아버지께로 돌아가 말씀의 뜻을 자세히 묻고 싶었으나, 그와 달리 무빈의 몸에는 날개가 없었다.


'이 육신은 날개도 없으면서 왜 날아가려 했던 걸까?'


무빈의 몸은 아무 저항 없이 그의 통제에 따랐다. 덕분에 그는 오랜만에 다리를 이용해서 한참 걸었다.


하염없이 계단을 걸어 내려온 후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 중력을 가진 행성에서, 날개 없는 육신은 반드시 크게 다쳤을 법한 높이였다.

난간에 매달려 서있던 무빈이 날개 없이 하늘로 출발하려던 순간에, 그가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빈에 대해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몸의 습관에 따라 대충 걸으면서, 아버지의 뜻을 해석하느라 골몰했다.


"빛을 밝히라니... 나의 태생적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께서..."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그는 일종의 즐거움마저 느끼며 아버지의 의도를 고찰했다.

아버지의 언어는 온 우주의 법칙이며, 어떤 마법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존귀한 권능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될지도 모른다, 하는 희망을 품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10001번째로 선언했다.


"빛이 있으라"


그러나 이곳은 이미 항성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행성이다.


오래전 이름 모를 그의 형제가 온 생명을 다한 선언으로 만든 항성의 빛, 이 행성의 아침을 서서히 밝혀내고 있었다. 그가 새로이 몰아내야 할 어둠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래서 10001번째 선언은 10000번의 시도들에 비해 오히려 초라한 빛을 발하다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밝히라고 하신 빛은 대체 어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한 것인가. 이미 항성이 있는 곳에서 다시 항성을 만들 수 있는가. 아니, 나는 어차피 항성을 만들지 못한다. 열도 없는 나의 빛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런 고민을 하느라 육신을 통제하지 않고 내버려 둔 결과, 몸은 그간의 관습에 따라 교실까지 걸어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금, 그는 항성이 밝게 빛나고 있는 행성에서 몰아내야 할 어둠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뭐하냐, 새끼야?"


종후는 차가운 눈매와 날 선 말투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종후의 마음에 드리운 새까만 어둠을 살피고 있었다.


"무, 무빈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자리에 앉아!"


교사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 애쓰며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정작 종후에게 해야 할 말을 겨우 무빈에게 뱉어낸 교사의 마음도 온통 짙은 어둠이었다.


그는 다시 무빈의 몸을 통제했다. 종후와 교사가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오도록 몇 걸음을 옮겨 섰다.

그리고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온 생명을 담아 선언했다. 어둠을 찢는 권능의, 10002번째 선언이다.


"빛이 있으라"

작가의 이전글나는 안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