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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Jun 27. 2022

[주간단남] 6월 4주 차 아침 생각

22.06.19(일) - 22.06.25(토)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3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6.20 (월)


(..)

1차적으로 든 생각만 해도 드러난 현상에 대한 나의 해석과 반응이지만 한차례 더 진행되었을 땐 이미 해석이 더 추가가 되는 셈이다. 사람은 이런 식으로 자기가 스스로 본인의 무덤을 판다. 감정에 관해서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생긴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잘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합리와 비합리는 누가 정하나? 그것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세상의 상식? 아니면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직관의 목소리?

(..)

세상에 도움을 주는 기분, 그것이 즐거움이든 위로든 희망이든 간에, 그것은 나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 즐거워하고 힘을 얻고 용기를 낸다면 그것만큼 보람찬 일이 또 있을까.





22.06.21 (화)


(..)

현대사회는 인파로 북적이는 저잣거리와 같다. 여기저기서 '날 좀 보소!'라며 외쳐대는 통에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머릿속에 늘상 새로운 정보들이 주입된다. 

(..)

메타인지가, 알아차림의 능력이 중요한 시대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정보가 범람할수록 이 능력은 더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꾸준히 수련해 두자. 근육맨의 시대는 저물고 마음 근육이 주목받는 시대가 온다. 이미 그 서막은 열린지 오래다. 몸만 신경 쓰는 사람은 머지않아 시류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것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았던 것이 바로 심신의 고른 발전이다. 균형과 중용의 삶, 곧 군자의 삶 말이다. 거기에는 유행도 유통기한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정수요 클래식이다.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지 잘 찾는 지혜를 갖춰야 하리라.





22.06.23 (목)


(..)

전쟁은 역시 끔찍하다. 윗대가리들의 이익만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목숨을 잃어야 하는 이런 비극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세상에 평화가 도래하기를 기도해 본다. 

(..)

전쟁터에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꿈이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늘도 새롭게 주어진 하루에, 피곤해도 감사함을 느낀다. 피곤함을 느껴도 그 감각마저도 생(生)의 증거 아니겠는가.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삶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을 그 자체로 경이롭게 여기면서 살자.




22.06.24 (금)


(..)

공간이 넓어지니 이걸 언제 다 채우나 하는 막막함도 물론(사실 이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정확히는 검열관의 생각.) 있었지만 의외로 그 점이 내가 아무리 써도 금방 채워져버리지는 않으니 쓸 말이 중단될 일은 없겠단 생각을 하게끔 해주어 한결 생각을 뱉어냄에 있어 거리낌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손목이 아픈 것은, 손가락이 아픈 것은 종이 사이즈를 줄여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글씨를 쓰는 나의 자세를 서서히 고쳐나갈 문제다.

그러나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즉각적인 해결책을 원한다. 근본을 건드리는 일은 대부분 귀찮고 막막하기 때문에 미봉책을 택하는 것이다. 서양 의학에서 질병을 만드는 환자의 유전적, 생활 습관 및 환경이라는 변수는 고려하지 않은 채 드러난 증상만을 제거하는 것을 치료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22.06.25 (토)


(..)

기는 우리 몸을 도는 보이지 않는 기운, 그리고 에너지이다. 이것의 존재를 상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사실 이는 동서양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 문명의 문제이다. 서양이라고 해서 총체론적 접근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들 또한 한때 자연을 사랑하고 아꼈고, 인간의 몸을 기계와 같이 단순히 여러 부품들의 합으로 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오히려 서구권이야말로 문명의 이기라는 거대한 초국가적 흐름의 첫 번째 식민지라고 볼 수도 있다. 그 흐름은 점점 커지고 넓어져서 이제는 온 세상을 단일 정부로 만들어 통제하려고 한다. 



(..)

내면에서 이는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도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인과율은 우주의 법칙이다. 그래서 세상에 '우연히'라는 것은 사실 없다. 우리가 그것이 일어난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 편의상 붙인 개념일 따름이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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