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의 글
성호와 나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하며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비건(Vegan)이 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비건(Vegan)이란 고기, 해산물뿐만 아니라 계란, 우유 등도 안 먹는 100% 완전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또한, 동물을 착취하여 얻는 제품(꿀, 모피 등)이나 서비스(동물원, 수족관 등)도 소비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완벽한 비건이 되기는 어려울 때가 많기에 ‘비건 지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2019년 5월,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비건이 되어 2년 넘게 지속해오고 있다. 단숨에 무 자르듯 결심한 것은 아니었고 물 흐르듯 일련의 사건들이 모여 우리가 비건이 되게끔 이끌었다.
2018년도 가을, 성호의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쓰러지셨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뇌경색이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말짱하시던 분이 한순간 오른쪽 팔다리를 쓰지 못하고 발음까지 어눌해지셨다. 어머니를 바로 옆에서 간병했던 성호는 질병이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뒷전으로 생각하는 게 건강인만큼, 성호도 건강보다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성호가 잊고 살던 '건강'에 눈을 뜨게 했다. 배달음식, 가공식품에 찌들어 있던 생활에서 벗어나 건강과 관련된 책과 관련 자료를 찾고 몸에 좋다는 식단을 이것저것 시도해보았다. 그 끝에 자연식물식(가공하지 않은 통곡물, 과일, 채소 등의 순식물성 재료 위주의 식사)을 했을 때 몸이 편안하고 건강해짐을 느꼈다.
그맘때쯤 내가 ‘비건’이 되어보겠다고 선언을 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고기 없는 식탁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자식들에게 소고기를 구워주셨고 외식 메뉴는 돼지갈비로 고정이었다. 제일 좋아했던 간식은 말해 뭐해, 닭강정이었다. 낮이건 밤이건 닭강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숯불고기가 듬뿍 올라간 떡볶이를 먹고 있었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고기에서 비린내가 났고, 문득 내가 씹고 있는 것이 한때는 살아있는 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쫀득하게만 느껴졌던 그 말캉한 식감이 한순간에 낯설게 느껴지면서 씹지 말아야 할 것을 씹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등심에서 핏물이 나와 그릇을 물들일 때에도, 동태탕에 토막 난 동태가 들어 있을 때에도 왠지 모르게 비위가 상하고 찜찜했다. 고기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모양이 이상할 때, 즉 고기가 더 이상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을 때, 동물과의 끊어진 연결감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러던 중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모든 것이 자본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최하위층을 차지하는 동물들은 생명으로서의 권리를 직접 외칠 수도, 들고일어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인간은 그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기에 동물들에게 밀집 사육, 항생제 투여, 학대 등은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였다. 온몸에 염증이 가득하고 피가 나지만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동물들을 보면서 마음이 미어졌다. 평생을 고통받다가 죽임 당하는 동물을 먹고서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다.
더 이상은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를 성호에게 전하고 나는 비건이 되어보기로 했다. 성호는 내 얘기를 듣고 비건과 관련된 책, 다큐 등을 찾아보더니 이에 크게 동감했다. 건강 때문에 채식을 하고 있던 그였기에 이미 식단은 비건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채식을 하는 이유에 건강이라는 개인적인 이유보다 더 큰 이유인 ‘동물권’이 포함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비건 라이프는 벌써 2년이 넘었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건강해졌고, 아무도 해치지 않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 덕분에 삶의 질도 높아졌다.
길을 걷다 보면 식당 하나 건너 하나꼴로 동물이 재료가 되는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세상에서 비건으로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비건 불모지인 한국에도 점점 대체육 시장이 생기고, 마트에서 비건라면이 판매된다. 고기 없는 월요일, 간헐적 채식, 하루 한끼 채식 챌린지 등 고기 소비를 줄이고자 하는 운동도 생겨나고 있다.
임수정 배우님, 이슬아 작가님 등 유명하신 분들도 비건을 지향하고 계시니 든든하고 힘이 난다. 주류가 아닌 길이기에 앞으로도 용기가 필요한 순간들이 많겠지만 그때마다 내 옆의 성호, 그리고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많은 분들을 떠올리며 힘을 내보려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비건에 관심을 가지고 비건이 트렌드가 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고 묵묵히 이 길을 걸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