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연애는 아닙니다만

by 청윤 단남

성호의 글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거야?”



6년째 연애 중. 만난 지 오래된 탓일까 아니면 둘 다 나이가 제법 찼기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듣는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서 두 사람이 만나 연애를 하고 나이가 차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내가 모르는 법 조항이라도 새로 생긴 것이 분명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여태 양가 부모님을 정식으로 뵙지 않았다고 하면 대부분 놀란다. 비밀 연애냐고 진지하게 묻는 사람도 있다. 오래 만났으니 당연히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고, 그런 경우라면 아무리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부모님을 한 번쯤은 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만남의 자리가 성사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아직 결혼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 만났지만 각자 부모님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가 생길 기회가 없었다.



물론 결혼과 상관없이도 자식의 애인을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무래도 아직 한국에서는 결혼할 사이가 되었을 때만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민경이와 나의 경우 연애 초에는 결혼을 언급할 나이가 아니었기에 그런 자리가 없었고, 서로를 꽤 오래 만난 지금도 여전히 결혼을 서둘러서 해치워야 하는 과제로 생각하지 않다 보니 어영부영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꼭 결혼 때문이 아니라 편하게 밥 한 끼 하자고 보는 자리라고 해도 혼기에 가까운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을 고려하면 단순한 식사 자리조차도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자식이 데려온 애인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에는 ‘며느리/사위’로 적합한지 따져보는 ‘평가 모드’가 작동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자식의 애인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고, 그렇게 형성된 첫인상은 앞으로의 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결혼 상대로서의 평가에서는 사람 됨됨이보다 경제적인 능력이 더 중요할 것이다. 간혹 인품을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다. 자식의 결혼 상대가 이렇다 할 직업이나 수입이 없다는데 달가워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훌륭한 결혼 상대가 되려면 무엇보다 ‘반듯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 하나 엇나감이 없이 사회가 부여하는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 온 사람일수록 적합한 결혼 상대라는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회사를 나와 자유롭게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런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부모님들의 입장에서 보면 평범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식들의 결정을 받아들이시는 데도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하실 텐데, 거기에 똑같이 그런 길을 걷고 있는 애인까지 데려오면 울화통이 터지실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둘은 서로의 부모님과의 만남을, 상견례 같은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식사 기회조차도 자꾸만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사는 것이 기본 옵션인가 보다. 거기에 더해 괜히 민경이의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귀중한 자식 허파에 자유로운 삶이라는 바람이 들게 한 장본인이 된 것 같아서. 어머님 아버님, 오해 마셔요. 다 민경이가 좋아서 한 선택입니다! (고자질)



우리만 좋자고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이기적으로 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기준을 버리고 마냥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만 살고 싶지도 않다. 무엇이 현명한 방법일까? 지금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우리 각자만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부모님들이 보시기에도 제법 괜찮은 수준에 이르는 것, 혹은 철면피를 깔고 당당하고 진취적으로 나아가서(?) ‘밥 한 끼 사주십쇼!’ 하고 우렁차게 아양을 떠는 것. 아양 앞에 장사 없는 법이다.



어쩌지, 둘 다 쉬워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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