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의 글
채식을 한다고 하면 간혹 우리를 식욕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채식을 하게 될 경우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있는 음식들 중 상당수를 포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 우리 둘 다 체격이 큰 편이 아니라서 더욱 그런 오해를 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물론 기존에 먹던 음식 중 일부를 더 이상 먹지 않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식욕이나 식탐이 적은 사람만 채식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커플은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채식을 하기 전 민경이는 맛집 검색 앱 ‘망고 플레이트’에서 우수 회원인 ‘망고플레이트 홀릭’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맛집 탐방을 좋아했고, 나 역시 음식과 술을 좋아해서 20대 후반 때는 체지방률이 30%에 달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우리가 음식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함께 자전거를 타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던 우리는 갑자기 민경이의 친구가 극찬하며 추천해 줬던 한 식당이 가고 싶어졌다.
그 식당은 우리가 있던 곳에서 약 23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서든 먹고야 마는 우리는 급가야 자전거를 그대로 타고서 그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자전거를 자주 타시는 분들에게 23km는 우스울지 모르지만, 가끔씩 따릉이(서울시 공공 대여 자전거)나 타던 게 전부였던 우리에게 자전거로 그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더군다나 그때 민경이는 자전거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잘 타지도 못하던 상황이었는데도, 반드시 그걸 먹겠노라는 일념으로 발바닥에 땀나도록 페달을 밟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열정이 대단했다. 그만큼 우린 음식에 진심이다.
그런 우리가 채식을, 그것도 가장 엄격한 비건으로, 어느새 2년이 훌쩍 넘게 지속하고 있으니 대견할 따름이다. 비결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 먹기’에만 집중했을 뿐. ‘우리가 밥상에 고기가 없지, 식욕이 없냐’를 외치며, 민경이와 나는 고기 없이도 맛있는 것들을 잘 찾아 먹었다.
고기, 우유, 계란, 버터, 치즈, 해산물 등 그 많은 것을 포기하면 대체 무엇을 먹고 사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대체 식품들이 잘 나와 있어서 좋아하던 음식과 영원한 이별을 고할 필요도 없다.
비건 음식점들에 가보면 예전에 먹던 음식의 모양이나 맛과 식감, 풍미 등을 상당히 비슷하게 구현한 ‘채식 버전’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햄버거, 피자, 함박스테이크, 크림 파스타 등 웬만한 것은 다 채식 버전으로 만들 수 있다.
직접 요리를 해 먹을 때 활용 가능한 ‘대체 식품’들도 시중에 다양하다. 고기 대신 콩이나 곡류로 만든 ‘대체육(肉)’을, 우유 대신 견과류로 만든 ‘대체유(乳)’를 쓸 수 있다. 심지어 치즈나 버터,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도 인터넷이나 일부 오프라인 식료품점에서 채식 버전으로 구할 수 있다.
누군가는 고기를 안 먹겠다면서 대체육은 찾아 먹는 채식주의자들을 모순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고기의 촉촉하고 기름기 가득한 맛을, 치즈의 고소함과 짭조름함을, 버터의 깊은 풍미를 싫어해서 채식을 했다고 했는가? 인간도 동물이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다.
단지 맛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희생되는 많은 생명과, 대규모 축산업 및 어업 등이 일으키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현대의 공장식 축산/양계/어업 등이 꼭 필요한 만큼만 생명을 취하는 방식이었다면, 고귀한 생명 하나가 지니고 태어난 본래의 수명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방식이었다면, 그랬다면 나도 여전히 고기를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는 것을. 자본주의와 ‘기다림’은 어울리지 않는다. 황금알을 매일 한 개씩만 낳아주는 거위가 생긴다면 한 개로는 부족함을 금방 느끼고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고 마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 탐욕을 피할 수 없으면 줄여야 한다. 민경이와 나는 인간의 탐욕이 미칠 수 있는 범위와 크기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자 현재의 삶을 택하고 지속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요즘은 대체 식품도 많이 찾지는 않는다. 굳이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흉내 내지 않고도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후무스(삶은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중동식 디핑소스), 스무디 볼(과일을 갈아 만든 스무디 위에 각종 토핑을 얹은 음식), PB&J 샌드위치(aka피넛버터 앤드 젤리, 땅콩잼과 과일잼을 한 면씩 발라 겹쳐 먹는 샌드위치) 등등 계속 나열하자면 식당 메뉴판 하나는 만들 정도다.
채식을 하기 전에 먹던 음식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지낸 과거의 나는 대체 얼마나 좁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