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소심한 비건인의 사교생활

by 청윤 단남

민경의 글




KakaoTalk_20211023_203607717.jpg 파주의 어느 멋진 비건 베이커리 카페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동기들이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먹으러 간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 자리에 낄 수 없어서 혼자 밥을 먹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서러웠다. 왠지 모를 소외감까지 느꼈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관계에 있어서 ‘음식’의 역할은 되게 중요하다. 밥 한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친해질 접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입사 초창기여서 동기들과 한껏 친해지고 싶었던 나는 그날 밤 혼자 울적한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친한 사람들과는 편하게 만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친구들에게 만나자고 연락이 오면 그때부터 툭- 마음속에 돌덩어리 하나가 들어앉은 기분이다. 어디서 만나자고 해야 할까? 약속 장소 근처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까? 그냥 밥 말고 커피만 마시자고 할까? 원래도 소심한 나인데 비건이 되고 나서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더 쩔쩔매게 된다.



친구들은 내가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한다. 그때부터 주도권은 내게로 넘어온다. 모든 모임에서 늘 “그래. 좋아!”를 외치고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속 편한 나란 사람에게 결정권이 있다니. 어깨를 짓누르는 돌덩이도 추가된다.



내가 몇 개의 비건 식당 리스트를 제안하면 친구들이 그중에서 하나를 고른다. 이대로 끝! 이면 좋겠지만 그때부터 내 마음은 계속해서 걱정 회로를 돌린다. 친구들이 유명한 맛집을 가보고 싶었는데 나 때문에 못 가는 건 아닐까? 나 또한 비건이 되기 전부터 미식가 못지않게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포기하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친구들이 평소에 비건 식당을 가볼 기회가 거의 없었을 테니, 내가 이 구역의 비건 대표라도 된 것마냥 하나부터 열까지 체크하게 된다. 접근성, 메뉴의 맛과 창의성, 가격대, 심지어 식당의 친절도까지.. 이 음식으로 인한 경험이 그 친구에게 ‘비건’이라는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더 좋은 방향으로 심어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친구들 몰래 눈치를 슬쩍슬쩍 본다. '맛있다'를 어떤 타이밍에 몇 번이나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맛있다고 하면 세상 뿌듯해서 음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누가 보면 내가 그 식당 사장인 줄 알겠네, 휴.



초반엔 함께 비건을 지향했으면 하는 욕심에 친구들한테 비건 관련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동물권,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은근슬쩍 내뱉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강요할 마음이 전혀 없다. 나에게 옳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누군가를 내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도 남이 ‘이래라저래라’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강요는 반감만 일으킬 뿐이라는 걸 잘 안다.



인생의 여러 중요한 문제들은 타인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해야 한다. 자신만의 경험과 논리 위에서 선택했을 때 그 결정은 좀 더 탄탄하고 지속 가능한 것이 된다. 나 역시 지금까지 비건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비건 식당은 아무래도 선택지가 한정적이다. 친구들이 나와 함께 비건 식당에 가기로 선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심지어 우리 가족도 나랑 밥 먹을 때 항상 비건 식당에 가진 않는다.



함께 비건 식당에 가는걸로도 고마운데 오히려 나 덕분에 비건에 대해 알게 되고 비건 음식을 접할 수 있었다면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에겐 마음 편히 더 맛있는 비건 식당을 소개하고 데려가고 싶다.



새로운 시도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세상 바깥에 있는 것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따스함. 그런 마음들 덕분에 소심한 쫄보 비건은 오늘도 힘을 내서 비건 식당에 친구들을 데려간다.

이전 09화음식은 투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