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투표다

by 청윤 단남

성호의 글





ⓒ NordWood Themes on Unsplash


우리가 이렇게 변할 줄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요리를 시작하게 될 줄이야. 이유는 딱 하나, 비건에게는 원할 때 어디서나 편하게 외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건 식당이나 카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맘 놓고 외식을 하기에는 아직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살아남으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비건 가공식품으로 냉동실을 가득 채우거나, 요리를 시작하거나. 우린 건강을 생각해서 두 번째 선택지를 택했다.



우리 둘은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라면 23km의 거리도 주저 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열정을 가졌지만, 정작 요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심지어 군대에서 막내 6개월 시절에는 ‘요리’가 주 업무였다.) 약 5년간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은 적은 아마 10번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민경이는 더 심각(?) 했다. 라면 물을 잘 못 맞춰서 라면을 한 번 끓였다 하면 홍수로 범람한 강물처럼 국물이 넘쳐났다.



음식을 한 번이라도 직접 해본 사람은 간단해 보이는 메뉴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과정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알게 되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정조 임금 시대의 문인이던 유한준이 말했듯 무언가 알고 나서는 모든 것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어떤 재료들이 요리에 들어가는지,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밥상 위에 오르는지를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어떤 식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요리를 ‘채식’으로 하다 보니 가장 먼저 동물성 식재료들이 마트 진열대 위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게 됐다. 고기나 생선이야 직관적으로(?) 그 출처를 유추할 수 있지만, 우유나 계란 같은 부산물을 얻는 과정에서도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순진하게도 과거의 나는 그저 소젖이 많이 나와서, 닭이 알을 많이 낳아서 인간이 가져다 먹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동물보다는 인간이 우선이었다. 낙농업, 양계업 안에서 동물들은 생명이라기보다는 기계에 가까웠다. 소는 젖 만드는 기계, 닭은 알 만드는 기계다. 우유나 계란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는 수컷들은 곧바로 ‘처리’된다. 인간이 고기를 먹지 않았다면 그런 처사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착취 구조가 해결되지 않은 채 일부 제품들에 ‘동물 복지’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은 마치 ‘인도적인 성폭행’과도 같은 형용모순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채식을 한다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과일, 채소 등과 같은 농산물에도 지속 가능한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전에는 유기농이 좋다고 말만 들었지 왜 좋은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단지 몸에 좋아서 혹은 맛이 좋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더 싼 것만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제는 지속 가능한 농작물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몸뿐 아니라, 지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대지에 입맞춤을>에 따르면 토양은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여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늦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의 농산물을 재배하기 위해 뿌려대는 온갖 농약, 제초제, 살충제 등으로 인해 현재 지구 토양의 약 2/3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가격이 더 싼 것만 사는 행위는 지구를 망가뜨리는 지속 가능하지 못한 방식에 손을 들어주는 셈이 된다. 친환경 유기농 상품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이 일상에서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서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소비는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에 대한 ‘투표’나 마찬가지다. 채식으로 요리를 시작하며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된 우리는 ‘가격’보다는 ‘가치’에 투표하려고 노력한다. 가치를 지지하는 소비는 옳은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더 오래 일을 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힘을 보태는 행위인 것이다.


밥상 위에 오르는 음식에 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식을 하는 것, 더 비싸더라도 경제적 여유가 허용하는 선에서 최대한 국산, 유기농 식품을 구매하는 것, 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는 곳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 등이 먹거리에 관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치 소비이다.

이전 08화나 과일 좋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