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의 글
비건으로 살면서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뭐든 남들 하는 대로 똑같이 하고 살지 않으면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니까. 채식은 먹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음식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개인적으로 식욕이 매우 왕성한 편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전에 먹던 음식이 너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나의 최애 음식은 라면이다. 갓 조리된 라면 국물의 짭조름함이 적당히 스며든 면발을 후후 불어 입으로 왕창 넣으면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하다.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 놀랐던 점 중 하나는 라면 국물에도 고기 성분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뒷면의 성분표를 보니 알레르기 유발 성분에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생선 등 온갖 동물 친구들을 ‘육·해·공’ 구분 없이 총집합시켜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채식을 시작하고도 유혹에 무너진 순간이 적지 않았다. 특히 술 마신 뒤에 주체할 수없이 올라오는 라면에 대한 욕구를 이겨내기가 힘들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나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꼭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오늘은 참아야지’ 했는데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편의점에 들어가 ‘소고기 함유’가 버젓이 적혀 있는 라면을 집어 뻔뻔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비건이라 칭하던 남자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 와중에 삼각김밥은 단 한 번도 산 적이 없다. ‘고깃덩어리’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은 이성을 잃은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꺼려졌나 보다. 한바탕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날뛰는 내 식욕을 달래고 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탈함이 밀려왔다.
단지 인간의 미각을 위해 소중한 생명을 빼앗겼을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이 드는 것과 동시에 고작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식욕을 흘려보내지 못한 나 자신을 ‘위선자’라고 자책했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그때 느꼈던 참담한 심정은 지나면 금세 잊어버리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또 한 번씩 스스로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리곤 했다.
나의 경우는 라면이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기존의 먹거리를 포기하신 많은 분들은 각자만의 투쟁의 시간을 겪고 있을 것이다. 정의보다는 자본의 논리로 철저하게 돌아가는 시장은 결코 우리의 결심을 응원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끝없이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고 회유한다. 시스템의 유혹에 끝내 굴복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시스템을 벗어난 자들의 숙명이다. 별 수 있나, 우리가 선택한 길이니 오롯이 책임을 질 수밖에.
어쩌면 흔들린다는 것은 내 안에 중심이 있다는 뜻 아닐까?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이나 오뚝이가 좌우로 끝없이 흔들리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것은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균형을 잡고 나아간다는 건 끝없이 흔들리는 것의 동의어다. 중심이 없다면 흔들리기도 전에 무너져버렸을 것이다.
그런 흔들림이 있었기에 장기적으로 채식을 유지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숱한 유혹에 시달리면서 의지력이라는 연료가 다 떨어졌을 때 채식을 아예 포기해버리는 대신 한 번씩 일탈을 함으로써 다시 원래의 궤도로 돌아올 연료를 채웠을지도.
그때마다 나에게 멀리 나아갈 힘을 주었던 동물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한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나는 앞으로도 이 길을 굳세게 걸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