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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Jun 13. 2024

당신이 옳은 게 아닙니다

다만 '어떠어떠할' 뿐입니다

누군가가 못마땅스럽다면 인간은 쉽게 '비정상', '비상식', '미친' 등의 딱지를 붙여버리기 일쑤다. 혹은 우열을 나누는 등급화를 시전 하기도 한다. 때로는 분노나 혐오라는 감정까지 사은품(?)으로 지급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는 건지,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 건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못마땅해하고 분노를 느끼는 지점들은 사실 내 안의 또 다른 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특징이나 욕망이 억눌러져 있어서 발현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신도 이미 다른 영역이나 상황에서는 그러고 있는데, 혹은 과거 한 때에 그랬었는데, 인지를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요는 이것이다. 어떤 경험이 자신을 그대로 투과하지 못하고 감정적 찌꺼기를 남긴다면 필시 그것은 '나'라는 필터의 거름망에 뭔가가 걸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는 필터의 생김새, 즉 자신의 내면을 살피기보다는 그런 잔흔을 남긴 대상, 사건, 사람 등을 탓할 뿐이다. 그러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건, 내가 옳다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수 없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상황이, 사람이, 환경이 내 생각과 다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우리는 옳지 않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다만 어떠어떠할 따름이다. 그건 타인도 마찬가지.



제게 지혜를 주소서 (강진 남미륵사의 불상)



마음공부는 결국 스스로와의 끊임없는, 평생에 걸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코스피, 다우존스 지수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는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자기 자신이 무엇에 오름세와 내림세를 타는지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관심조차도 주지 않기가 십상이다. 의수, 의족, 인공심장, 이런 게 매우 값비싸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정품'이자 '순정'인 우리 자신의 몸뚱이는 함부로 굴린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 얼마나 빛나는 별이 깃들어 있는지는 모르고, 어찌 바깥의 풍경에만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것일까. 


주변에 대해 이러저러한 판단을 내리고, 어떠어떠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결국 안에 어떠한 세상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직간접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지표와 같다.


결국 세상은 나를 괴롭히려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가르침을 주기 위한 촉매제다. 도화선에 붙은 불을 따라따라 가다 보면 결국 도착하는 곳은 우리 내면이다. 가르침, 깨달음의 주제와 내용은 모두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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