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름다운 작은 섬으로 떠나다 (1)
6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여행 자체를 자주 가는 성격도 아닌 것도 있지만 금전적 여유가 넉넉하지 않은 탓도 없다면 거짓말이겠다. 마지막으로 갔던 해외여행도 당시 다녔던 첫 번째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 덕분에 갈 수 있었다. 퇴사 이후에는 나만의 인생 항로를 개척해 보겠다고 이리저리 방황한 탓에 주머니 사정은 늘 넉넉하지가 않았다. '내가 지금 팔자 좋게 해외로 여행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 하는 생각이 내 마음 한 구석엔 늘 자리하고 있었다.
2년 전에 어쩌다 영화 <안경>을 보게 됐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그냥 '한적함', '사색' 같은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였기 때문이었는데, 영화 포스터를 보니 등장인물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우스꽝스러워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하는 호기심도 들었었다.
영화 내용 자체엔 특별할 게 없다. 너무나 잔잔한 나머지 졸음도 유발될 정도였다. 그런데 뭔가 영화를 보기 이전과 보고 난 후의 난 어딘가 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기억에 남는 건 영화에서 내내 나오는 푸른빛의 한적한 바다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는 것, 그리고 빙수였다(사쿠라쨩의 미묘한 표정도 잊을 수 없었다).
단지 그게 전부였다, 영화의 촬영지가 된 저곳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들게 한 것은. 영화가 끝나고 곧바로 검색을 해봤다. 명칭은 요론섬(与論島). 제주도의 우도보다 살짝 더 큰, 일본 가고시마 현에 위치한 조그만 섬이다. 작은 섬이라서 정보도 적고 관광색 수도 적고 그래서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으면 불편함이 클 것 같았기에 내 마음속 '언젠가는 가볼 곳' 리스트에 넣어놓기만 했다.
What's happened, happened.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영화 <테넷>의 대사이다. 나는 이 대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가 이번 생에서 경험코자 하는 바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된 바라고 믿기 때문이다. 달콤한 맛을 경험하기로 되어있다면 부드러운 초코케익을 먹을지, 잘 익은 망고를 먹을지는 고를 수 있어도 우리는 삶의 어떠한 길목 위에서 단 맛을 갈망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될 일은 되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번 여행도 아마도 가게 될 여행이었나 보다. 그래서 2년 전에 미리 영화를 보게 된 것이고, 우연히 이번 7월에 생전 내 SNS 알고리즘이 보여주지 않던 일본인의 계정이 피드에 떴고, 그게 하필이면 요론의 바다였나 보다. 그 에메랄드빛 일색의 찬란한 윤슬빛을 보니 가슴 한구석에 묻어뒀던 요론섬이 다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영화를 함께 봤던 여자친구에게 요론의 바다를 다시 보내주자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말을 한다.
"가자!"
참고로 그녀는 계획되지 않은 행동은 잘하지 않는 'J형' 인간이다.
우리는 왕복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출발일까지는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어쩌면 2년 전 영화를 보던 그때 이미 여행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요론으로 떠나기로 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