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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17. 2022

내가 너를 믿는 데 진실은 필요없어

Photo by Kevin Erdvig on Unsplash


(..중략..)

물론 사람마다 '마지막' 순간이 갖는 의미를 서로 다르게 느낄 수는 있다. 그리고 인간의 심리적 경향이 마지막 순간을 더 잘 기억하기에 그것이 무의식적 패턴일 것이다. 오죽하면 '유종의 미'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게 문화적 풍습이나 심리학적 기제라고 해서,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타당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백번 잘 해도 한 번 실수할 때 상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말하는 사람은 애초에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사람이다. 


물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처럼 백 번째까진 신뢰를 주던 사람이 백 한번째에 백회분의 신뢰를 줬던 사건들의 총합 그 이상으로 뒷통수를 세게 칠 수도 있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런 태도는 결과만을 기억하는 인간의 인지적 오류로 인한 편하고 안일한 사고 패턴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런 태도를 지닌 사람에겐 믿음을 갖기 위해서 언제나 '증거'가 필요하다. 마치 연료가 떨어지면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처럼.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그 중에서도 사랑과 믿음과 같은 다소 거룩한 것들은 처음에는 당연히 어떤 조건들이, 믿음과 사랑을 형성할 어떤 기초 재료들이 필요하겠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다. 그 자체로 에너지를 얻어서 매 순간 그런 증거가 있지 않더라도 유지가 되고 또 증폭이 된다. 마치 모닥불에 매 순간 장작을 넣어야 불꽃이 유지가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처음 불을 지필 땐 기초적인 장작이 필요하지만 나중엔 '불멍'을 때릴 수 있을 정도로 알아서 활활 타오른다. 단지 시간을 두고 한 번씩 땔감을 보충하면 그만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그런 연대의 감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밑바탕에 세상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깔고 다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늘 감사함을 디폴트 값으로 지니고 다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해석 하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가슴에 믿음과 감사가 있으면 매 순간 '증거'가 있어야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저 내가 가슴에 지니고 있는 그것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반면, 그것을 평소에 품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조건을 따진다.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감사할 일이 생기면 감사를 하다가도 조금이라도 이에 반하는 일이 생기면 감사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신과 증오만이 남는다. 감사는 늘 품고 다니지 않는 대신 불신과 경계, 분노와 증오를 품고 다니고 있다고 해야 더 정확활지도 모르겠다. 


더 따뜻한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사람들 가슴에 감사와 사랑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언젠가 도래할 수확의 시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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