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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Jun 29. 2022

그렇게 뛰다가는 제 명에 못 죽습니다.

달리기는 러닝 트랙에서 하시죠

얼마 전 외출 때문에 집에서 나가는데, 지하철 시간이 빠듯했다. 집에서 역까지 뛰면 5분도 안 걸리기에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내리자마자 냅다 뛰었다. 아직은 시원한 공기가 남아있는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몸에 열이 확 오르고 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헐떡거리는 호흡이 무색하게도 나는 바로 코 앞에서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툭 하면 놓쳐야 안 뛸텐데. 꼭 타율(?) 좋은 사람이 계속 달린다.


숨을 고르며 다음 열차가 올 동안 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는데, 저 멀리 에스컬레이터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집에서 나올 때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던 한 남성분이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 황급히 고개를 돌려 독서 삼매경에 빠진 척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몸을 옆으로 틀고 나가면서까지 전력질주를 해놓고서는 양반처럼 느긋하게 걸어오시던 그 분과 결국 같은 열차에 타게 된 그 상황이 여간 민망하고 머쓱한 것이 아니었다. 


딱히 중요한 약속에 늦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나는 왜, 무엇을 위해 달렸던 것일까? 



지하철 안전사고의 거의 90%가 뛰다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 90%의 사건에서 과연 늦으면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칠 만큼 중요한 상황에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만 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딱히 늦지도 않았고 급한 일도 없는데도 그냥 뛴다. 


기다리는 것이 싫은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대부분이 뛰다가 놓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조금 늦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증거다. 그중 정말 늦어서는 안 되는 극히 일부만이 곧장 버스나 택시를 타러 밖으로 뛰쳐나간다. 



평소에 조급하고 서두르는 사람은 먼저 갈(?)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삶에 여유가 없는 사람은 죽음도 여유 없게 맞이할 공산이 크다. 호상보다는 비명횡사할 운명을 스스로 자초하는 꼴이다.


특히 본인 사주에 '살'이 있는 사람들은  평소에 더 조심해야 한다. 특히 '백호살' 같이 비교적 강한 기운일수록 더더욱. 내 사주에는 백호살은 없지만 '급각살'이 있다. 남보다 잘 다치는 기운을 타고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금만 부주의하면 밥 먹다가 입술을 자주 씹어서 2~3주는 쌩고생을 하곤 한다. 예전에 터치럭비 동호회에 나가던 시절에도 툭하면 발목을 삐어서 오거나 경기 중에 자잘하게 부상을 입곤 했었다.



위급한 순간도 아닌데 지하철이 왔다고,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었다고 우사인 볼트마냥 전력으로 뛰는 것은 자기 명을 재촉하는 셈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급하게 뛰어야만 하는 상황이 얼마나 되던가?


물론 꼭 서둘러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목적에만 정신을 팔지 말고, 반드시 안전에 유의하도록 하자. 가는 데 순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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