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
벌써 일년의 마지막날이다. 이럴 때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낀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게 솔직히 좋은 감정으로 다가오는 건 아니다.
일년 동안 대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이든 기념할 것들을 남기려 하는 것 같다.
빠르게 지나간 시간의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남겼을까?
여러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2016년은 하루도 빼지 않고 글과 그림을 남겼다.
그걸 왜 하기 시작했을까?
작년엔 책을 내 봤지만, 마음 속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았다.
팀을 옮기고 회사일을 열심히 해봤지만, 그건 도리어 마음에 빈 공간만 더 만들었다.
도대체 채워지지 않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러다가 언젠가 누군가의 그림 컬렉션을 보았고, 누군가로부터 미술의 값어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어디선가 창작에서 나오는 해방감에 대한 걸 읽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마음의 빈 공간이 채워지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덜 허무한가?
절대 아니다.
지나고 보니 이건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거나 TV 드라마를 사랑하거나 게임에 중독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런 것들의 공통점은 그걸 하는 순간만 마음이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면 또 허무함이 몰려온다.
이건 해결하는 게 아니라 모면하는 일이었다.
글과 그림을 남기면서, 실력이 늘어간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고, 운 좋게 내 글과 그림으로 작은 전시회도 참가해 봤다.
그래도, 그 때 뿐이다.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왜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아마 마음이라는 것은 원래 채워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채울 수 있지만 내가 그 방법을 못찾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책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떠오르는 방편은 하나 있다.
바로, 마음이 채워졌다고 느끼는 순간과 순간의 사이를 줄이는 것이다.
무언가를 해서 마음이 채워졌다고 느끼고 마음이 비워지기 전에 빨리 또 무언가를 해서 마음이 다시 채워졌다고 느끼겠다는 말이다.
이렇게 자꾸자꾸 뭔가를 해서 마음의 빈 공간이 느껴지는 시간이 줄어들면, 비록 그게 모면의 연장일지라도 허무함은 좀 작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내년에는 자꾸자꾸 뭔가를 더 해보려고 한다.
2017년의 말일에 그 뭔가가 또 나를 어떤 기분으로 만들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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