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은 언제 움직이는가

귀스타브 르 봉으로 읽는 북한 체제의 위엄과 붕괴 조건

by 독불장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심리학자인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라는 저서를 읽었다.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제목 그대로 ‘군중’들이 어떠한 생각과 특성을 가지는지가 궁금하여 선택하였다. 귀스타브 르 봉은 프랑스의 혁명적 시기를 살면서 생겨났던 군중들을 보면서 그 특징을 자세히 연구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저서 ‘군중심리’를 통해 나는 군중의 특징과 함께, 북한에서 군중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 혹은 상황은 없을지 생각해 보았다.

군중은 언제 등장할까? 군중의 가장 확실한 역할은 소멸 직전의 노쇠한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라고 르 봉은 설명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 문명의 토대를 이루던 정신적 힘이 영향력을 상실하는 순간 매우 적절하게 야만족이라고 이름 붙여진 분별없고 난폭한 군중이 등장하여 그 문명을 최종적으로 해체해 버린다. 지금까지 문명을 창조하고 이끌어나간 것은 소수의 지적인 귀족들이었지 결코 군중이 아니었다. 군중은 오직 파괴하기 위한 힘밖에 없다. 그들의 지배는 항상 야만적인 상태의 한 단계를 의미한다. 문명은 정해진 규칙과 규율, 본능적인 것에서 이성적인 것으로의 이행, 미래에 대한 예측, 높은 수준의 문화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군중은 이 모든 조건을 절대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변함없이 보여주었다. 군중은 오직 파괴만 하는 자신들의 힘을 이용하여 마치 쇠약한 육체나 사체를 분해하는 세균처럼 활동한다. 어떤 문명의 조직이 너무 오래되어 허약해지면 꼭 군중이 등장하여 그것을 무너뜨린다. 바로 그때 군중의 주요한 역할이 드러나며, 당분간은 수의 철학이 유일한 역사철학으로 보인다.

이때 등장하는 군중은 자체의 특성을 지닌다. 군중은 모든 추론을 연상을 토대로 이룬다. 그러나 군중이 연상한 사상들 사이에는 오직 표면상의 유사 관계나 연속 관계만 존재할 뿐이다. 군중이 결합하는 사상들은 투명한 물체인 얼음을 입에 넣으면 녹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자 역시 투명한 물체인 유리를 입에 넣으면 녹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에스키모의 그것들이나 용맹한 적의 심장을 꺼내 먹으면 자기도 그렇게 용맹해질 것이라고 상상하는 야만인들의 그것들, 그리고 고용주에게 착취당하자 세상의 모든 고용주는 노동자들을 착취한다고 곧장 결론지어 버리는 노동자의 그것들처럼 연이어진다.

오직 표면상의 관계밖에 갖지 않는 상이한 사실을 연결하고 특수한 사례를 즉각 일반화해 버리는 것, 바로 이것이 군중의 추론이 띠는 특성이다. 군중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런 종류의 추론방법을 그들에게 사용한다. 오직 이런 추론 방법만이 군중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군중은 연속되는 논리적 추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군중이 이성적인 추론을 하지 않거나 잘못 추론하며 이성적 추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해도 무방한 것이다. 어떤 연설문들은 그냥 한 번만 읽어봐도 논리가 매우 빈약한 것을 알 수가 있는데도 군중에게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런 연설문이 철학자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단을 설득하기 위해 쓰였다는 사실은 망각되고 있다. 군중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연설가는 그들을 매혹하는 이미지를 환기할 줄 안다. 그가 성공하면 그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장광설로 채워진 책 스무 권은 설득해야만 하는 군중의 두뇌에 가 닿는 몇 마디 문장만큼의 가치조차 없다.

군중은 단순하다. 군중은 파괴적이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던 군중의 특징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군중이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분단 이후 지난 70년 동안 몇 차례 체제위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군중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에서 군중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북한의 감시적인 체제의 특성상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고, 공포적인 정치 분위기로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북한의 절대 통치자의 ‘위엄’으로 인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부터는 ‘군중심리’에서 읽을 수 있었던 통치자의 ‘위엄’에 초점을 맞춰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책에서는 위엄이 통치자의 위엄이 사라졌을 때 군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위엄은 성공에 바탕을 둔다. 성공을 거둔 모든 인간과 뿌리를 내린 모든 사상은 바로 이 사실 자체에 의해 더는 반박당하지 않는다. 성공의 소멸은 거의 언제나 위엄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이야말로 성공이 위엄의 중요한 초석들 가운데 하나라는 증거다. 어제 군중에게 찬양받던 영웅도 오늘 실패하면 곧장 그들로부터 야유당한다. 실제로 그런 변동은 위엄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더 강력해질 것이다. 이런 경우에 군중은 몰락한 영웅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고, 더는 인정할 수 없는 우월함에 눌려 머리를 숙였다는 사실에 대해 앙갚음을 한다. 자신의 동지들과 무수히 많은 동시대인의 목을 잘랐을 때 로베스피에르는 엄청난 위엄이 있었다. 그러나 몇몇 지지자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면서 권력을 박탈당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이 위엄을 잃어버렸고, 군중은 단두대로 끌려가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 전날 그의 희생자들에게 퍼부었던 것과 똑같은 저주를 그에게 퍼부어댔다. 신도들은 예전에 자기들이 믿었던 신들의 동상을 항상 꼭 미친 사람들처럼 때려 부수는 법이다.

성공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위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위엄은 또한 반박에 의해서도 사라지지만, 그 속도는 조금 느리다. 그러나 이 절차는 매우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다. 위엄에 이의가 제기되는 순간, 그 위엄은 더 이상 위엄이 아니다. 오랫동안 위엄을 유지해 온 신들과 인간들은 자신에 대한 반박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군중의 찬양을 받으려면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통치자는 어떻게 위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은 분명 지난 70년 간 위엄을 잃을 수 있는 실패를 몇 차례 겪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통치자는 위엄을 잃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책임전가’에 있다고 보았다. 북한은 항상 눈에 보이는 실패를 고위층의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그들의 통치자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다른 부하들이 잘못하고,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선전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그들의 실패는 숨기고, 성공은 부풀려 선전한다. 결국에 그들의 통치자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실패를 한 적 없이 성공만 하게 된 것이다.

북한은 지난 70년 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독재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독재정치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그들의 통치자를 신격화하고 선전하고 선동하는 작업을 실시해 왔다. 그렇게 형성된 북한 통치자의 ‘위엄’은 결국 북한에서 일반 인민들이 군중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 한 방법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에서 군중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들의 실패를 부각해, 북한 통치자의 위엄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방법이 대북제재이다.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 인민들이 실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통해 위엄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북한 인민들이 직접 남북한을 비교할 수 있도록 보고 듣게 만드는 것이다. 남북한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면서 자신들의 체제가 실패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강압적이고 단호한 대북제재를 통한 압박전략, 대화와 타협을 통한 대북교류 전략 등 무수히 많은 대북전략이 존재한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에 전념하는 좁은 시야를 부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전략을 섞어가며, 최종적으로 북한 내 분열을 유도하여 대한민국 주도적인 통일을 설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통일을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270-271 사상과 신념

사상은 문명과 민족 진화의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이 사상들은 어디서 비롯되고 어떤 과정을 통해 민족들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르 봉은 최초 사상들이 비축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다양한 형태로 조합되어 여러 가지 체계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생애 말기에 쓴 마지막 저서 <역사철학의 과학적 토대>에 가서야 기독교적 세계관에 동의하면서 천국은 곧 동물성이며, 인간을 동물성에서 벗어나도록 만든 원죄는 곧 인식의 원죄(인간들이 동물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워야만 되도록 만드)라는 대담한 가설(이 가설은 생물체의 운명을 주재하는 신과 우월한 사상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전제한다)을 제기한다. 그런데 이 사상의 비축량이 빈약하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것들이 그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일까? 르 봉은 <민족 진화의 심리 법칙>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사상들이 이처럼 완만한 변화를 겪었을 때 그것들이 엄청난 힘을 가지는 것은 이성이 더는 그 힘에 영향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득당하여 어떤 사상(종교적인 것이건, 아니면 다른 것이건 간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일체의 이성적 사유에 접근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하여 사상은 의식에서 무의식으로의 이행을 통해 신조로 바뀐다.

그렇다면 신념이란 무엇인가? 르 봉은 <여론과 신념>에서 신념을 이렇게 정의한다. “어떤 믿음 행위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에는 신념이라는 이름이 붙여져야 한다. 신념의 정당성이 나중에 관찰과 경험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면 그 신념은 신념이기를 그만두고 지식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신념은 사전에 검토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채 인간의 정신 속으로 침투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정신을 매혹시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르 봉에 따르면, “신념이란 무의식적 기원을 가진 믿음 행위로써 우리가 어떤 사상이나 견해, 성명, 교리를 함께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또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어떤 원인들이 만들어내는 무의식적 직관이다. “이성은 그것의 형성과 무관하다. 이성이 신념을 정당화하려고 애쓸 때 이미 신념은 형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신념의 과정에는 ‘이성’과 ‘의지’의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르 봉에 따르면, 신념은 제도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예술과 사랑, 일체의 창조물, 과학적 인식 등 요컨대 문명 전체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신념은 그것을 넘어선다. “어떤 문명을 인도하는 다양한 사상 중에서 예를 들어 예술이나 철학과 관련된 일부는 어떤 민족의 상부에 남아 있다. 특히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개념들과 관련된 또 다른 사상들은 군중의 심층 속으로 내려간다. 이 사상들은 대체로 크게 왜곡되어 거기 도착하지만, 그것이 그때 일체의 토론을 할 능력이 없는 원시적 영혼에 행사하는 힘은 엄청나다. 사상은 확고부동한 어떤 것을 표현하며, 그것의 효과는 그 어떤 둑도 더는 막을 수가 없는 격류처럼 격렬하게 전파된다. 그때 역사를 변혁하고 오직 군중만이 완수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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