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시리아·북한을 거쳐 다시 묻는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국가란 무엇일까? 나는 평소 여러 가지 책을 통해서 국가는 국민들이 상호의 필요에 의해 설립한 조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연차 교서를 볼 수 있다. 프랭클린의 연차 교서는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고, “상호적 보호와 행복”을 위해 국민이 설립한 것이 국가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것이 반드시 국가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북한을 생각했다. 북한을 보면 국가라는 것이 반드시 상호적 보호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북한에서 국가는 그저 김 씨 일가와 노동당 상위 20%의 엘리트 계층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국가, 국가의 국민들 대부분이 고통만 느끼는 국가는 없느니만 못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의 이러한 생각에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지금부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바뀐 생각과 느낌들을 카테고리 별로 기록한다.
국가에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이 일어난다면
책에서는 철학자 홉스의 주장인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동의 권력이 없으면 인간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주장과 함께 그 사례를 설명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소말리아와 시리아를 보여준다. 민간 선박과 선원을 납치해 몸값을 받아내는 소말리아를 보라.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대륙 북동쪽의 뾰족 나온 반도에 있다. 소말리아 무장반군은 1991년 포악한 독재를 자행하던 군사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반군 지도자들 사이에 벌어진 권력투쟁 때문에 혁명은 곧장 내전으로 번졌다. 크고 작은 파벌과 부족들이 벌인 무력투쟁과 집단학살, 강간, 약탈행위가 난무하는 가운데 소말리아 국민들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인구 1,000만 정도였던 이 나라에서 내전 발생 이후 20년 동안 4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국적군은 결국 성과 없이 철수했고 내전은 계속되었다. 2012년 우여곡절 끝에 소말리아연방공화국이 탄생했지만 강하고 안정된 국가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소말리아에서 해적질은 내전으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의 연장이었다. 내전의 포화 속에서 자란 청년들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런 청년들을 모아 바다 위에서 납치와 약탈해위를 벌인 집단이 바로 소말리아 해적이다. 국제사회가 지원해 정부를 세웠지만 소말리아 정부는 아직 질서를 만들 능력이 부족하다. 소말리아의 근본문제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동의 권력’이 없다는 것이다. 내전 기간 소말리아 영토 안에는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폭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합법적 권력주체가 없었다. 소말리아 국민들의 삶은 군사독재정권이 강권통치를 자행했던 때보다 훨씬 더 비참했다. 국내 난민들의 삶은 들짐승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국가 출현 이전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소말리아의 상황은 국가 없이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와 같이 경쟁하는 자연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홉스의 이론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한 증거가 된다.
유럽의 대규모 난민 유입을 불러온 시리아 사태도 다르지 않았다. 2011년 내전이 터지기 전까지 40년 동안 시리아는 알 아사드 부자의 대를 이은 철권통치 아래 놓여 있었다. 당시 중동 지역은 ‘아랍의 봄’이라는 이름이 붙은 민주주의 정치혁명에 휩쓸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 시리아 국민들의 시위를 정부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반정부 시위는 무장투쟁으로 번졌고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치달았다. 이 내전은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소수인 이슬람 시아파 집권 세력과 다수인 수니파의 종교전쟁이기도 했다. 러시아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은 정부군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반군을 지원했다. 여기에 이라크에서 발원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뛰어들어 동부 지역을 점거하면서 시리아는 완전한 혼돈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유엔난민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내전이 터진 이후 시리아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1,00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대부분은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리비아 등 인접국가로 피난했지만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간 난민도 많았다. 시리아 난민은 독일, 스웨덴, 세르비아,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의 국가로 퍼져나갔으며 대서양 건너 미국까지 흘러갔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넌 난민은 2015년 한 해에만 100만 명이 넘었고 2016년에도 30만 명을 넘어섰다. 육로를 택했다가 굶주림과 전염병에 목숨을 잃거나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뒤집어져 사망한 난민의 수는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내전 발생 이전의 시리아는 훌륭한 국가가 아니었다. 시리아 국민들은 훌륭한 삶을 살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전 이후의 삶은 더 혹독하고 처참했다. 무능한 독재정권도 고통이었지만 국가가 무너진 내전 상태의 삶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홉스의 국가론이 오랜 세월 널리 받아들여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례를 봤을 때, 북한에서 현재의 정권이 갑작스럽게 무너져 권력의 공백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위 사례들보다 더욱 큰 비극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또한 주변 강대국인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함께 우리나라까지 북한에 영향력을 미치지 위한 행동을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돌발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평화가 급작스럽게 사라지고, 혼돈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과연 북한의 현재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이 비록 악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그들이 사라지길 원하는 전략을 짜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사라져야 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철저한 계획 아래에 사라져야 한다. 그들을 대체하고,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세력이 기반을 세웠을 때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북한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시켜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그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가는 어떤 사람이 다스려야 하는가.
춘추전국시대 500년 대전란의 뒤 끝에 살았던 맹자는 지식의 지배가 아닌 덕의 지배를 요구했다. 덕을 갖춘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는 수많은 국가들이 명멸하는 가운데 모든 왕들이 부국강병에 혈안이 되어 있던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덕을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역설한 맹자는 지식의 지배를 원했던 플라톤만큼이나 엉뚱해 보인다. 맹자가 말하는 덕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나와 타인의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사랑과 정을 다른 사람에게 적절히 표현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그런 마음을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맹자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네 가지 마음을 갖춘 군자가 왕이 되어 무엇보다 먼저 백성의 경제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충분하게 하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먹여 살릴 만하게 하여, 풍년에는 언제나 배부르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산업을 진흥하고 세금을 줄여주며 형벌을 가볍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바람과 같은 군주의 덕으로 풀과 같은 백성의 마음을 감화시킬 수 있다. 힘과 위세를 내세우는 패자가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은 환호 작약하지만, 왕자가 덕으로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은 느긋하게 자족한다. 왕자의 백성들은 죽여도 원망하지 않고 이롭게 해 주어도 군주의 공으로 여기지 않는다. 백성들은 날마다 선으로 옮겨가지만, 누가 그렇게 만드는지 알지 못한다. 군자가 지나가는 곳의 사람들은 감화되며 그가 거처하는 곳은 다스려진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그야말로 노골적인 완력이 권력의 원천이었고 지식은 부차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지식인은 강한 군대를 보유한 군주가 지식의 중요성을 알고 합당한 예우를 해야만 뜻을 펼 수 있었다. 이런 시대에 맹자는 완력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으며 백성들의 물질적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의로 사람을 대하는 덕치만이 군주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왕도정치론을 펼친 것이다.
지식과 지혜를 가진 철학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철권통치를 주장한 플라톤의 주장이 순수한 당위론인 것과 달리, 덕을 갖춘 군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맹자의 이론은 당위론인 동시에 관찰과 경험에 토대를 둔 현실론이었다. 그는 통치하는 자의 개인적 능력만이 아니라 그의 지도력에 대한 대중의 승인이 국가권력의 정통성과 안정성을 좌우한다고 보았다. 맹자는 군주를 민심의 바다에 뜬 배에 비유했다. 백성은 무겁고 군주는 가볍다. 물을 거스르면 배는 뒤집어진다.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주왕의 제후였는데, 폭정을 자행한 주왕을 정벌하고 왕조를 교체했다. 이를 두고 제선왕이 신하가 임금을 시해해도 되는 것인지 물었을 때, 맹자는 주 무왕이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한 사내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덕이 있는 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맹자의 주장은 덕이 없는 왕은 왕이 아니며 그런 왕을 덕이 있는 자가 처단해도 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고대 중국 대륙에서 실제 전개되었던 국가의 흥망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플라톤과 맹자의 국가론은 서로 다른 점이 많지만 한 가지는 같다. 바로 목적론적 국가론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선·정의·덕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는 안정되고 통합된 국가일 수 없다. 목적론은 철학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널리 통용되던 관념론이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생물학의 법칙을 적용하면, 목적론은 지성이 아직 제대로 발달하기 전인 어린아이들이 애용하는 사고방식이다. 한때 이런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엄마는 내게 밥을 해주기 위해서, 강아지는 나와 놀아주기 위해서, 냉장고는 시원한 음료를 주기 위해서 있다. 그런데 아빠는 내게 해주는 것이 없다.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주의 제도의 목적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과 강점은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마음껏 저지르지는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범위 안에서 합법적 수단으로만 통치하도록 하는 법치주의, 언론·출판·사상·표현·집회·시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은 법률로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한 헌법, 입법부와 사법부를 행정부와 분리하여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하는 삼권분립, 감사원과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예방하고 시정하는 일을 주된 임무로 하는 독립적 국가기관 설치, 복수정당제와 같은 제도화된 권력분산과 상호견제 장치가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이 된 것은 모두 이런 목적을 이루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한 6.25 망각과 용서?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의인가 통일을 위한 전진인가?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공동체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씨족공동체들이 통합되어 작은 부족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폭력과 살상이 동반되지 않았을 리 없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족국가 단계를 넘어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이 성립한 과정은 물론이요, 삼국시대에도 전쟁과 살상이 끊이지 않았다. 삼국통일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일으킨 대규모 살상과 전쟁의 산물이었다. 후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왕조가 성립되는 과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 모든 테러와 살상을 망각하게 한 시간의 축복이 없었다면 한반도에는 단일한 민족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원나라와 청나라의 침략,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기억을 끊임없이 재생해 낸다. 이 기억이 살아 있는 한 우리 민족은 중국이나 일본과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 겨레가 한반도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다시 국가적 통일을 이룬다면 6.25 전쟁의 처절한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만약 그 기억이 계속해서 힘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영원히 형성하지 못한다. 더 큰 결속을 위해서는 망각과 용서가 필요하다.
군인으로서 평화를 위해 추구해야 할 우선적 가치는 통일이다.
글을 마치면서, 책의 259쪽에는 국가공동체 최고 목표에 대해 설명해 준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국가공동체의 최고 목표 또는 최고 가치는 자유, 복지, 평등, 안전, 평화, 환경 등이다. 자유는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복지는 1인당 국민소득으로 표현되는 좁은 의미의 물질적 후생을 넘어 국민 삶의 질을 가리킨다. 안전은 범죄뿐만 아니라 각종 재해와 실업, 질병, 노령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는 군사적 위협에 대한 단순한 방어를 넘어 한반도에서 무력충돌과 전쟁의 위험이 항구적으로 제거된 상태를 가리킨다. 환경은 단순한 주거환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연생태와 생활환경의 정착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는 군인으로서 평화에 대해 주목하여 생각했다. 책을 봤을 때 현실적으로 완전한 평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0%에 최대한 가깝게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 가장 첫 번째가 바로 통일이다. 통일이 되면 적어도 직접적인 적과의 충돌로 인한 고민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경험을 토대로 주변 강대국들과도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